항목 ID | GC0619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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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王宿川-退溪阮-地名由來 |
영어공식명칭 | Origin of the Name of Wangsukcheon and Toegyewon |
분야 | 구비 전승·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현모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5년 4월 13일 - 「왕숙천과 퇴계원의 지명 유래」, 이수자가 이성근[남, 1917년생]에게서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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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2년 4월 - 「왕숙천과 퇴계원의 지명 유래」, 구리 문화원에서 펴낸 『구리시의 민속 문화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6년 4월 30일 - 「왕숙천과 퇴계원의 지명 유래」, 구리시에서 편찬한 『구리시지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8년 1월 20일 - 「왕숙천과 퇴계원의 지명 유래」, 이수자가 펴낸 『설화 화자 연구에 수록 |
관련 지명 | 왕숙천|퇴계원 - 경기도 구리시 |
채록지 | 동구동 경로당 - 경기도 구리시 동구동 |
성격 | 경기도 구리시를 관통하는 왕숙천과 퇴계원의 이름이 생긴 이야기 |
주요 등장 인물 | 이성계|이방원|박순|강씨 부인|정도전 |
모티프 유형 | 운명 모티프 |
[정의]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왕숙천과 퇴계원 이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왕숙천은 경기도 구리 시내를 관통하는 하천으로, 함흥차사 이후 서울[한양]로 돌아오던 이성계가 이방원을 보고 뒤로 물러나 며칠 밤을 머물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퇴계원은 이성계가 이방원이 더럽다고 '퇴'하고 침을 뱉고 물러선 곳이라 붙어진 이름이다. 「왕숙천과 퇴계원의 지명 유래」는 왕숙천과 퇴계원 이름이 생긴 지명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왕숙천과 퇴계원의 지명 유래」는 전 중앙 대학교 교수이자 민속학자인 이수자가 1995년 4월 13일에 구리시 동구동 경로당에서 이성근[남, 1917년생]에게서 채록하였으며, 2002년 4월에 간행한 『구리시의 민속 문화』에 재수록되었다. 1996년 4월 30일에 간행한 『구리시지』와 1998년 1월 20일에 간행한 『설화 화자 연구』에도 수록되어 있다. 한편 강진옥 외 3인이 2014년 2월 9일과 20일에 구리시 관내 몇 개 경로당에서 채록한 4편이 『증보 한국 구비 문학 대계』-경기도 구리시 편에 수록될 예정이다.
[내용]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뒤에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옥새를 이방원[훗날 태종]에게 팽개쳤다가 빼앗기게 되자 함흥으로 떠나 버렸다. 이에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의 노여움을 풀고자 함흥으로 사신을 보냈으나 이성계가 사신을 죽이거나 잡아 가두는 일이 반복되었다['함흥차사'의 유래]. 마침내 이성계의 친구인 박순이 새끼 딸린 어미 말을 끌고가 설득하여 이성계를 서울[한양]로 돌아오게 할 수 있었다. 이성계가 경기도 구리 쯤에 왔을 때, 이성계는 마중 나온 이방원을 향하여 화살을 쏘았는데 맞지 않았다. 이성계는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여 '퇴(退)'하고 내광리로 물러나 하천 근처에서 며칠 머물면서 낚시하였다. 여기서 이성계가 머문 하천을 왕이 숙박하며 머물렀다고 '왕숙천'이라 하였고, 퇴하고 물러난 곳은 '퇴계원'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왕숙천과 퇴계원의 지명 유래」는 왕숙천과 퇴계원이 생긴 지명 유래담인 동시에 구리시 인근에 널리 전승되는 운명 모티프 설화이다. 함흥차사와 연관된 설화가 일반적이지만, 망우리와 연관되어 전승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