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920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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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忘憂里由來 |
영어공식명칭 | Origin of Manguri |
분야 | 구비 전승·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현모 |
[정의]
경기도 구리시와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을 잇는 망우리 고개 이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정한 뒤, 자신이 묻힐 건원릉 터를 정하고는 "이제는 걱정이 없다."고 말한 곳이 바로 망우리 고개라는 지명 유래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망우리 유래」는 민속학자인 이수자[전 중앙 대학교 교수]가 1995년 4월 13일에 구리시 동구동 경로당에서 이성근[남, 1917년생]에게서 채록하였다. 1996년 4월 30일 편찬한 『구리시지』에 수록하였고, 1998년 1월 20일 발간한 『설화 화자 연구』와 2002년 4월에 구리 문화원에서 발간한 『구리시의 민속 문화』에 재수록하였다. 또 조희웅은 1980년 8월 20일 구리읍 수택 5리 주민 이강범[남, 57세] 자택에서 채록하여 『한국 구비 문학 대계』-경기도 의정부시·남양주군 편에 수록하였으며, 1996년 1월 발간한 『구리의 역사와 문화』에 재수록하였다. 그 밖에 임병혁의 『설화집』2와 권태호의 『경기 민속지』7-구비 전승에 수록되었으며, 강진옥 외 3인이 조사하여 『증보 한국 구비 문학 대계』-경기도 구리시 편(미간행)에 수록 예정이다.
[내용]
태조 이성계가 무학 대사와 정도전의 도움으로 서울[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을 건국하였다. 이후 이성계는 죽어서 묻힐 건원릉의 묘 자리를 정하고 돌아오다가 한 고개에서 쉬게 되었다. 이때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 모든 근심을 덜었다."라고 말해서, 이성계가 머문 고개를 '망우리'라고 하였다고 한다. 한편 건원릉 묘 자리를 잡은 사람이 정도전이란 설과 무학 대사라고 하는 설이 있다.
[모티프 분석]
'망우리'의 유래는 왕숙천이나 퇴계원 등과 결합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함흥차사가 일어난 이후에 형성된 설화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