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4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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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佛敎建築 |
영어공식명칭 | Buddhist Architectur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집필자 | 박병선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부처의 유골이나 불상을 안치하고 예불을 드리기 위해 세운 구조물.
[개설]
청송 지역의 사찰 가운데 전통사찰로 지정된 곳은 많지 않다. 2014년 문화관광체육부가 집계한 한국의 전통사찰은 944곳이며, 경상북도가 지자체 가운데는 가장 많은 176곳으로 그 중에서 청송지역은 대전사(大典寺), 보광사(普光寺), 수정사(水淨寺), 주왕암(周王庵), 백련암(白蓮庵)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유서깊은 불교 건축물 또한 적을 수밖에 없는데, 청송 지역의 대표적인 불교 건축물로는 대전사 보광전(普光殿), 보광사 극락전(極樂殿)과 만세루(萬歲樓), 수정사 대웅전(大雄殿), 주왕암의 가학루(駕鶴樓)와 나한전(羅漢殿) 등이 있다.
[문화재 지정 불교 건축]
청송 지역 불교 건축물 가운데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은 보물 제1570호인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 제1840호로 지정된 청송 보광사 극락전을 비롯하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2호인 청송 만세루,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3호로 지정된 수정사 대웅전 등이 있다.
[건립 시기]
청송 지역 불교 건축물의 건립 시기를 각 건축물의 상량문을 통해 살펴보면, 대전사 보광전은 1672년(현종 13)에 중창되었고, 보광사 극락전은 1615년(광해군 7)에 건립되었으며, 수정사 대웅전은 1715년(숙종 41)에 건립되었다. 또 보광사 만세루는 정확히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모르나 소헌왕후의 친가인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沈弘孚)의 묘재각(墓齋閣)으로 건립된 것을 보아 적어도 세종 이후, 그리고 1856년(철종 7)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 중·후기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청송 지역 전통사찰의 건축물은 대부분 조선 중·후기에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청송 지역의 주요 불교 건축]
청송 대전사 보광전은 화강석 기단 위에 화강석 초석을 놓고 약간 흘림이 있는 원주를 세워 구성된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된 단층의 다포계(多包系) 맞배기와집으로 내부에는 석가모니 삼존불을 봉안하고 있다. 기단은 화강석을 다듬어 가구(架構)식으로 쌓아 올리고, 기단 상부는 전돌을 깔아 마감하였다. 기단 위에 자연석의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워 기둥 상부에 창방(昌枋)과 평방을 걸고, 내외 2출목(二出目)의 공포를 올렸다. 공포는 전후면 기둥 위에 주상포를 올리고 각 주칸에 주간포를 2개씩 배열하였다. 맞배집에서도 간혹 측면에 공포를 배치하기도 하지만 대전사에서는 측면에 공포를 두지 않고 풍판을 길게 내려 처리하였다. 공포의 모양은 정면은 앙서형, 배면에는 교두형(翹頭形)으로 하여 전후면이 다르게 하였다. 첨차는 공안이 없는 교두형이고 정면의 제공은 제3제공까지 앙서형으로 하고, 제4제공은 운공형으로 초각하여 외출목도리를 받게 하였다. 배면의 제공은 제2제공까지 교두형으로 하고, 제3제공은 변형된 삼분두 모양이고, 제4제공은 정면과 같이 초각하여 외출목도리를 받게 하였다. 처마도 전후면을 달리하였는데 정면은 부연이 달린 겹처마로 하고, 배면은 서까래만 사용하여 홑처마로 구성하였다.
청송 보광사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의 2고주(二高柱) 5량가구(五樑架構)이며, 다포계 양식으로 공포 구조는 내외 2출목 5포작으로 내외 출목수가 동일하다. 이로 인해 내목도리 장여와 2출목 장여 위에 공간을 벽으로 구성하였는데, 이것은 조선 중기 다포계의 특징으로 후기로 가면 내출목이 늘어나면서 내목도리 하부의 벽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공포 수법을 보면, 외부는 전후면 제공의 형태가 다르게 되었는데, 전면 제공은 쇠서형인데 비해 배면 공포는 쇠서가 조각되지 않은 교두형이고, 그 상부는 끝이 뾰족한 삼분두형으로 화려해지는 후기 이전의 수법을 보이고 있다. 내부는 중기 이전에 나타나는 교두형으로 전후면이 구성되어 있다. 지붕은 전면 겹처마, 배면은 홑처마의 맞배지붕이다. 특징적인 것은 측면 박공부에 설치된 현어(懸魚)[물고기 모양의 철물]이다. 조선 중·후기에는 앞뒤 박공이 만나는 부분에 지네철이나 꺽쇠로 연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당초문현어를 목재로 사용한 것은 보기 드문 예에 속한다. 또한 통평고대와 춤보다 폭이 넓은 부연도 조선 중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수정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양식으로 단정하고 아담한 조선시대의 건물이다. 정면의 3칸은 기둥 사이를 모두 같은 간격으로 나누고 각각 3분합문을 달았고, 내부는 마루를 깔았으며 중앙 뒷면에 불단을 마련하였다. 창방과 평방을 놓아 다포로 구성하여 전면에 1출목의 공포를 배치하였는데 기둥 사이마다 공간포를 1개씩 두었다. 대웅전의 전면은 겹처마, 후면은 홑처마로 되어 있고, 가구는 5량가이다. 측면 중앙에 고주를 세워서 대들보를 받치게 하였고, 가구 사이를 창호 없이 모두 벽으로 막았다.
보광사의 청송 만세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사방이 개방되어 있다. 만세루는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원기둥을 세운 주심포계의 단청을 올린 건물로 외1출목(外一出目)이다. 가구는 5량가로 대량 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놓고 세모꼴에 가까운 파련대공을 올려놓았으며, 주상부에서 외곽으로 돌출한 촛가지는 조선 말기 양식을 보이고 있다. 누마루는 우물마루를 깔고 사방에 헌함을 돌렸으며 북쪽 오른쪽에 오르내리는 목조 계단을 설치하였다. 박공에는 풍판을 달았는데 아랫면을 둥글게 굴렸다.
주왕암에는 조선 후기 건축물인 가학루와 나한전이 있다. 가학루는 주왕암의 출입문으로 2층의 누각으로 되어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형태의 주심포 양식의 건물이다. 그리고 나한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태의 주심포 양식의 건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