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1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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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一八七二年地方圖楊州 |
영어공식명칭 | 1872nyeon Jibangdo Yangju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손승호 |
[정의]
1872년에 제작된 군현 지도 가운데 구리시의 옛 모습을 포함한 지도.
[개설]
『1872년 지방도』는 1872년에 제작된 우리나라 지방 지도로서, 그림과 같은 형태로 제작된 회화식 채색 지도이다. 『1872년 지방도』「양주」 지도에는 한양 도성을 비롯하여 지금의 경기도 구리시, 양주시, 남양주시 등지가 포함되어 있다. 지도의 오른쪽이 동쪽이며, 주요 산과 물줄기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편찬/간행 경위]
18세기 들어 조선은 각종 문물 제도가 정비되면서 사회적으로 안정을 이어 갔다. 실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성과가 축적되었고, 각 지방에 대한 지리적 정보 획득을 위한 지도 제작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조선 사회가 정치적으로 혼란해지고 삼정의 문란이 발생하면서 민생의 안정을 위협하였다.
국가가 어지러운 상황에서 집권한 흥선 대원군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이후 국방을 강화하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1871년(고종 8)에 조선 각 지방의 실정을 파악할 수 있는 읍지를 편찬하게 하였고 이듬해인 1872년에는 전국 차원의 지방 지도를 제작하였다. 『1872년 지방도』 「양주」는 전국적인 지도 제작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경기도 40장의 지도 가운데 하나이다.
[서지적 상황]
『1872년 지방도』는 중앙 정부에서 일괄적으로 제작한 것이 아니라 각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작성한 것이다. 또한 제작 기간이 짧아 지도 전체의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각 지방별로 지도의 모양새가 다른 특징이 있다. 그러나 지도에 수록된 정보의 양은 다른 어떤 지도에 비해서도 많다. 『1872년 지방도』는 총 459매이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한 장으로 제작된 『1872년 지방도』「양주」는 지도의 제목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주요 도로는 붉은색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으며, 푸른색으로 그려진 하천은 그 폭까지 알 수 있도록 작성되었다. 산은 봉우리의 형태로 그려졌으며, 산의 연속체인 산줄기로 표기되었다. 산은 바위로 이루어진 돌산인 경우 옅은 회색으로 그려졌고, 그렇지 않은 산은 초록색으로 그려졌다.
[구성/내용]
한양 도성을 경도(京都)로 표기하였고 경도의 뒤쪽으로는 한양의 진산인 삼각산을 비롯하여 도봉산 등이 수록되어 있다. 지도에는 당시 양주군에 속하였던 면의 명칭, 도로, 하천, 산, 창고, 능묘, 사찰 등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의 북쪽 경계는 한탄강이다.
현재의 구리시에 해당하는 지역에는 아차산 봉수가 표기되어 있고, 그 북쪽으로는 구릉(九陵)이 아늑한 분지형 지형에 조성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구릉의 동쪽으로는 조선 왕릉을 만들면서 사용한 장비를 보관하던 동창(東倉)이 있고, 구릉의 남쪽으로는 구지(龜旨)라는 지명과 사창이 표기되어 있다. 도성에서 망우리를 지나 지금의 구리시를 횡단하여 동쪽으로 뻗은 도로가 그려져 있다.
[의의와 평가]
『1872년 지방도』는 개항기에 제작된 관찬(官撰) 지도로서, 각 지방의 정보를 가능한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제작된 지도라는 점에서 지도 제작의 원칙이 결여되어 있다. 『1872년 지방도』「양주」는 서울의 동쪽에 자리한 구리시의 조선 후기 모습을 파악하고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