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1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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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輿地圖(一冊三四列) |
영어공식명칭 | Yeojido(1chaek 34yeol)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손승호 |
[정의]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지도』중 현재의 구리 지역을 포함하는 경기도 양주목 일대의 지도.
[개설]
『여지도(輿地圖)』는 지도에 포함된 지명으로 미루어 1757년(영조 33) 이후부터 1766년(영조 52) 사이에 제작된 지도로 추정된다. 지도의 전반적인 양식은 18세기에 그려진 정상기의 『동국지도』와 다르게 전통적인 특성이 강하다. 『여지도』「양주목」은 조선 후기 양주목에 해당하는 지역을 그린 지도이며, 양주목에는 지금의 서울특별시를 비롯하여 경기도 구리시, 남양주시, 양주시 등이 포함된다.
[편찬/간행 경위]
『여지도』는 지도의 제작자를 비롯한 제작 시기 등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정확한 편찬 경위를 알기 어렵다. 그러나 지도가 선명하고 화려하게 그려져 있으며 지도에 수록된 지리 정보의 내용이 일반인이 필요로 하는 정보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앙 정부에서 『여지도』를 제작하여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당시에 국가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파악하기 위하여, 즉 거리 및 방향 등의 정보를 포함한 최신의 정보를 확보하기 위하여 편찬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서지적 상황]
『여지도』는 모두 6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군현의 지도와 함께 지리 정보가 기록된 설명문이 수록되어 있다. 지도는 364장이고, 설명문인 주기(註記)는 34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의 구리시를 포함하는 양주목은 1책에 수록되어 있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다. 지도의 표현 기법이 매우 뛰어나며 역사적·학술적 측면에서 가치가 높아 2008년 12월 22일 보물 제1592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여지도』의 우측 상단에 지도의 이름이 양주목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도에 색깔을 입힌 필사본으로, 크기는 가로 37.0㎝, 세로 31.0㎝이다.
[구성/내용]
『여지도』의 설명문에는 양주목에 속한 각 면까지의 거리 정보를 비롯하여 주변 군현의 경계에 이르는 거리 정보도 수록되어 있다. 한양을 경(京)으로 기록하였으며, 인왕산, 삼각산, 도봉산 등의 지리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양주목에 속한 각 면의 명칭은 노란색 사각형 안에 기록하였고, 산은 산줄기의 모습으로 묘사하였다. 하천은 그 폭까지 알 수 있도록 표현되었다. 구리시의 동쪽을 흐르는 왕숙천은 왕숙탄(王宿灘)으로 표기되어 있다.
현재의 구리시 일대는 『광여도(廣輿圖)』에 묘사된 모습과 거의 흡사하다. 즉 고양주면(古楊州面)을 비롯하여 구지면(龜旨面)이 함께 표기되어 있다. 구리시에 포함되는 지역에는 지금의 동구릉을 가리키는 육릉내(六陵內)라는 지명과 함께 다섯 개의 동그라미가 묘사되어 있는데, 이것이 『광여도(廣輿圖)』와의 차이점이다. 동구릉의 동쪽으로는 왕릉 건설 장비를 보관하던 동창(東倉)이 있으며, 그 남쪽으로 동구외택(洞口外澤)과 연지(蓮池)가 사각형으로 그려지고 각각의 명칭이 표기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여지도』는 18세기 중반 조선이 다른 나라와 어떻게 교류했는지, 얼마나 정확한 지도를 확보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보여 주는 지도첩이다. 『여지도』「양주목」은 구리시의 조선 후기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