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촌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13196
한자 坪村里
영어공식명칭 Pyongchon-ri
이칭/별칭 벌말,벌동(伐洞),벌리동(伐里洞)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근대/근대
집필자 손승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경기도 양주군 구지면 평촌리에서 양주군 구리면 수택리와 토평리로 나뉨
변천 시기/일시 1973년 -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수택리와 토평리에서 경기도 양주군 구리읍 수택리와 토평리가 됨
폐지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경기도 양주군 구리읍 수택리와 토평리가 구리시 수평동이 됨

[정의]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을 구성하는 지역의 옛 지명.

[개설]

평촌리(坪村里)는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개편이 이루어진 1914년 이전에는 경기도 양주군 구지면에 속하였다. 이후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평촌리의 일부 지역은 양주군 구리면 수택리(水澤里)가 되었고 나머지 일부 지역은 양주군 구리면 토평리(土坪里)가 되었다.

[명칭 유래]

평촌리라는 지명은 돌섬 북서쪽 들판에 있던 마을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벌판 한복판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데에서 '벌말'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를 한자화하여 '평촌(坪村)'이라 표기하였다. 벌말의 서쪽 마을은 아랫말이라 하고 동쪽 마을은 웃말이라 부른다. 1880년대에 일본이 제작한 『구한말 지형도』 '송파진'에서는 평촌리 일대의 지명이 벌동(伐洞)벌리동(伐里洞)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한글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오류인 듯하다.

[형성 및 변천]

평촌리는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양주군 구리면 수택리토평리로 나뉘었으며, 수택리토평리는 1973년 구리읍 승격과 함께 양주군 구리읍 수택리토평리가 되었다. 1980년 양주군에서 분리하여 남양주군 구리읍 소속이 되었고, 1986년 구리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기존의 토평리 전 지역과 수택리의 일부 지역이 합쳐져 구리시 수평동(水坪洞)이 되었다. 1996년 1월 수평동수택 1동, 수택 2동, 수택 3동으로 분리되면서 수평동은 폐지되었다. 기존의 수택동수택 1동으로 편제되었고, 토평리수택 3동으로 편제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토평리 지명은 토막리평촌리에서 각각 머릿 글자를 따서 생겨났다.

구리시에서는 평촌리라는 지명 대신 벌말이라는 지명이 사용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토평 초등학교 근처의 삼거리가 벌말 삼거리이다. 그리고 강변 북로의 토평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뻗어 왕숙천변까지 이어지는 도로의 명칭이 벌말로이다. 벌말로가 통과하는 구간이 과거의 평촌리에 해당한다. 벌말로의 서쪽으로는 도시화가 진행되어 시가지가 발달하였지만, 벌말로의 동쪽은 아직도 농촌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평촌리에는 일제 강점기에 약 100호가 농경 활동을 하며 거주하였지만, 1925년의 을축년 대홍수로 많은 사람이 마을을 떠나기도 하였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벌말벌말로장자 대로가 만나는 벌말 삼거리 일대를 가리키며, 현재까지도 자연 마을의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평촌리벌말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펼쳐진 범위에 걸쳐 있던 곳이며, 현재의 행정 구역상으로는 구리시 수택 3동을 비롯하여 수택 2동의 일부 지역까지 포함한다. 법정동으로는 구리시 토평동에 속한다.

[관련 기록]

일제가 1880년대에 제작한 『구한말 지형도』 '송파진'에는 평촌리 일대의 지명이 벌동(伐洞)벌리동(伐里洞) 등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신구 대조 조선 전도 부군 면리동 명칭 일람』을 비롯하여 1926년에 제작된 『조선 지형도』 '뚝도'에서는 평촌리(坪村里)로 표기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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