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21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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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先史 |
영어공식명칭 | Prehistory |
이칭/별칭 | 선사 시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선사/선사 |
집필자 | 최상기 |
[정의]
경기도 구리 지역에서 사람들이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에 활동한 시대.
[개설]
선사 시대는 인간의 출현부터 현재까지의 전체 기간을 문자 사용 여부를 기준으로 구분할 때 문자 기록이 존재하는 역사 시대와 대칭되는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던 시대를 가리키며, 일반적으로 구석기 시대·신석기 시대·청동기 시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현재 구리 지역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지만 인접 지역에서 이미 관련 유적이 조사되었으므로 앞으로 구리 지역에서도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경우, 관련 유물과 유적이 인창동·사노동·교문동 등에서 발견되어 일찍부터 이 지역에서 사람들의 활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구리 지역의 구석기 시대]
구리 지역의 구석기 시대는 현재까지 관련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지 않아 구체적인 모습을 알기 어렵다. 그러나 구리 지역을 포함한 한강 유역은 농경과 정착 생활의 시작 전부터 사람들의 생활에 유리한 여러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므로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거쳐 갔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강 유역에서는 이미 30여 곳이 넘는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조사되었는데, 구리 지역과 인접한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 지역에서도 다수의 관련 유물이 수습된 바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구리 지역의 구석기 시대를 알려 주는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구리 지역의 신석기 시대]
구리 지역의 신석기 시대는 구석기 시대와 달리 여러 유적과 유물들을 통해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구리 지역을 비롯한 한강 하류 유역은 풍부한 물과 비옥한 토양을 바탕으로 삼림 자원이 넉넉했으므로, 농경을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채집·어로·수렵 등을 통한 식량 획득 비중이 더 컸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에게 최적의 생활 공간이었다. 구리 지역에서는 아차산 북동쪽의 인창동·사노동·구릉산 등에서 빗살무늬 토기를 포함한 각종 토기와 석기의 파편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수습된 것이다. 현재 유물들이 발견된 지역 대부분은 개발 등으로 인해 훼손되어 본래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최근에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 지역에서 신석기 시대의 유적을 조사했는데 이곳에서 발견된 토기의 제작 시점이 기원전 3500년 전후로 추정되므로, 구리 지역에서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이 거주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구리 지역의 청동기 시대]
구리 지역의 청동기 시대는 신석기 시대와 마찬가지로 많은 유적과 유물들을 통해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주로 아차산 북동쪽의 인창동·사노동·교문동·구릉산 등에서 고인돌·구멍무늬 토기[공렬 토기(孔列 土器)]·덧띠 토기[점토대 토기(粘土帶 土器)]·반달 돌칼[반월형 석도(半月形 石刀)] 등 청동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들이 지표 조사를 통해 다수 발견되었다.
한국의 청동기 문화는 크게 요령식 동검(遼寧式 銅劍)·고인돌로 대표되는 요령식 동검 문화와 한국식 동검·덧띠 토기로 대표되는 한국식 동검 문화로 구분할 수 있다. 인창동과 사노동에서는 요령식 동검 문화에 속한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었고 교문동에서는 요령식과 한국식 동검 문화에 속한 유물들이 모두 발견되었다. 이는 구리 지역 청동기 문화의 성격 변화를 이해할 때 흥미로운 시사점을 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구리 지역의 초기 철기 시대]
구리 지역의 초기 철기 시대는 다양한 유적과 유물들을 통해 청동기 시대와의 계승·확장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청동기 시대의 흔적이 발견된 아차산 북동쪽의 교문동과 사노동 등에서 초기 철기 시대에 축조되었다고 추정되는 돌널무덤[석관묘(石棺墓)] 및 돌널무덤 안에서 출토된 동검(銅劍)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흑색·회청색 경질(硬質) 토기 파편 등 초기 철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들이 지표 조사를 통해 다수 발견되었다. 기원전 3세기 말부터 중국의 철기 문화가 한반도 북부 지역을 거쳐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까지 전해지는데, 한강 중·하류 유역에는 철기 문화의 전파를 보여 주는 여러 유적들이 분포한다. 특히 한강을 사이에 두고 구리시와 접한 하남시 미사동 지역에서 이미 초기 철기 시대의 주거지 유적이 발견된 점을 감안하면, 구리 지역에서도 같은 시기에 사람들의 생활이 이루어졌고 이는 선사 이후의 고대(古代)로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