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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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嬪金氏墓 |
영어공식명칭 | Hyobin Kimssi Myo|Tomb of Hyobin Kimssi |
이칭/별칭 | 효빈 김씨 묘역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교문 1동 |
시대 | 조선 / 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명희 |
[정의]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에 있는 조선 태종 후궁 효빈 김씨의 묘.
[개설]
조선 태종의 후궁으로 태종의 제1 서자 경녕군 이비(李 礻+非)의 생모이다. 처음에는 효순 궁주였다가 1872년 정1품 효빈(孝嬪)으로 추증되었다
[위치]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아차산 한다리 마을에 있다.
[변천]
효빈 김씨 묘는 당시에 조성된 묘갈(墓碣)[묘 앞에 세우는 머리 부분을 둥글게 굴린 작은 비석]은 없고 1987년에 비석을 새로 세웠다. 문인석(文人石)[문관의 형상으로 묘 앞에 세운 돌] 2기는 조선 시대의 석물이다.
[형태]
봉분은 모두 3기가 있는데 맨 위에 효빈 김씨의 묘가 있고, 봉분 뒤로 사성(莎城)[무덤 위에 반달 모양으로 둘러막아 쌓은 둑]이 쌓여 있다. 높다란 단 오른쪽 아래로 경녕군의 아들인 오성군 이치와 부인 팔계 정씨의 쌍분이 있다. 효빈 김씨 묘는 조성 당시의 묘갈은 없고 봉분 오른쪽에 1987년 개축한 신도비(神道碑)[죽은 사람의 업적을 칭송하여 새긴 비석] 형식의 비석이 있다. 효빈 묘 오른편으로 2미터 떨어진 곳에 조성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산신석[산신에게 제를 올리는 석단]이 놓여 있다.
봉분을 장식하고 있는 석물은 다른 묘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형식이다. 봉분 전면에 일자형의 장대석을 놓고 그 돌 양끝에 다시 일자형의 장대석을 앞쪽을 향하도록 놓았는데 앞쪽이 약간 벌어지게 하였다. 이렇게 양쪽으로 놓여진 장대석 사이에 상석(床石)[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하여 넓적한 돌로 만들어 놓은 상], 향로석香爐石)[무덤 앞에 향로를 올려놓는 네모반듯한 돌]이 있으며 상석에는 “효빈김씨지묘(孝嬪金氏之墓)”라고 새겨 있다. 상석, 향로석은 최근의 석물이다. 댓돌의 양끝 앞에 망주석(望柱石)[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이 1쌍 세워져 있고 그 앞에 문인석이 놓여 있다. 망주석은 최근에 세운 것이고 문인석은 묘 조성 당시의 것으로 마모가 심하다. 문인석 사이에 다시 댓돌이 놓여 있다. 봉분의 일자형 장대석은 옛 석물이다.
[금석문]
효빈 김씨 묘 상석 앞면에는 “효빈김씨지묘(孝嬪金氏之墓)” 라고 새겨져 있다. 새로 세워진 신도비 형식의 비석 전면에는 “조선국효빈김씨지묘(朝鮮國孝嬪金氏之墓)"라고 새겨져 있으며 후면에는 "효빈 김씨는 조선 왕조 태종 공정 대왕의 제일남이신 경녕군 휘 비의 생모이시다. 행실이 정숙하시고 사덕을 구비하시었기로 규곤에 해범이시었다. 대왕이 잠저 시에 경세지지를 천하에 펴시고자 분망하실 새 효빈 김씨는 원경 왕후 민씨와 더불어 대왕의 웅지를 내조로 보필하시고, 한편 아드님 경녕군을 지성으로 교회하사 어질고 착하신 천성의 바탕에 다시 효제충신하시고 학명 의리하신 현철한 인물로 키우셨다(孝嬪金氏는 朝鮮王朝 太宗恭定大王의 第 一男이신 敬寧君諱 裶비의 生母이시다. 行實이 貞淑하시고 四德을 具備하시었기로 閨壼에 楷範이시었다. 大王이 潛邸時에 經世之志를 天下에 펴시고자 奔忙하실새 孝嬪金氏는 元敬王后 閔氏와 더불어 大王의 雄志를 內助로 輔弼하시고, 한편 아드님 敬寧君을 至誠으로 敎誨하사 어질고 착하신 天性의 바탕에 다시 孝悌忠信하시고 學明義理하신 賢哲한 인물로 키우셨다.)"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효빈 김씨 묘는 전주 이씨 대동 종약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효빈 김씨의 묘는 최초 조성 이후 석물의 증축 과정에서 본래 양식이 훼손되었으나 조선 시대 초기 후궁의 묘라는 점에서 관련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