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0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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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始萬墓 |
영어공식명칭 | OhSiman Myo|Tomb of OhSiman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명희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동복 오씨 묘역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오시만의 묘.
[개설]
오시만(吳始萬)[1647~1700]의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영석(永錫), 호는 춘헌(春軒)이다. 아버지는 호조 판서 오정일(吳挺一), 할아버지는 관찰사 오단(吳端), 증조할아버지는 이조 참판 오백령(吳百齡)이다. 어머니는 사인(舍人) 정호선(丁好善)의 딸이다. 예조 판서 정위(挺緯)에게 입양되었다. 부인은 돈령부 판관(敦寧府判官) 한두상(韓斗相)의 딸 청주 한씨(淸州韓氏)이다. 1666년(현종 7)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76년(숙종 2) 정시 문과(庭試文科)에 장원으로 합격한 뒤 성균관 전적과 사헌부 지평을 지냈다. 1679년 문과 중시(文科重試)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 수찬·부수찬·부교리, 사간원 헌납, 홍문관 교리 등을 역임했다.
[위치]
오시만 묘는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한다리 왼쪽 능선의 동복 오씨 묘역에 있다. 동복 오씨 묘역에 들어서면 초입에 오전의 묘와 오정위 묘가 있고 그 위에 오시만의 묘가 있다.
[변천]
오시만 묘는 1984년에 증조할아버지 오억령, 할아버지 오익 등과 함께 묘단이 조성되었다.
[형태]
오시만 묘는 봉분 뒤에 사성(莎城)[무덤 뒤에 반달 모양으로 두둑하게 둘러싼 토성(土城)]이 있으며 봉분 앞에는 혼유석(魂遊石)[영혼이 나와서 놀게 하기 위하여 무덤의 앞에 설치해 놓는 직사각형의 돌] 은 없고 상석[가로 140.5㎝, 세로 88㎝]과 향로석(香爐石)[무덤 앞에 향로를 올려놓는 네모반듯한 돌]이 있다. 상석은 댓돌 위에 놓여 있으며, 앞에는 두 동자가 원형의 향로석을 받드는 특이한 형태의 향로석이 있다. 동자석 밑에는 대석이 깔려 있다. 상석 좌우의 장대석은 흙에 덮여 잘 보이지 않는다. 묘 좌우로 망주석이 있는데 최근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금석문]
비문이 없어서 정확하지느 않지만 동복 오씨 종친회에 따르면 오시만의 묘로 추정되는 묘는 오억령의 묘단 바로 아래에 있는 사성을 쌓은 묘라고 한다. 비명이 없어서 합장묘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현황]
동복 오씨 묘역의 묘 위치는 종렬식이어서 증조할아버지 오전, 양아버지 오정위, 오시만의 순으로 안장되어야 하는데, 산등성이에 묘가 있는 상황이라 점차 능선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가족 관계 서열과 거꾸로 묘소가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오시만의 증조할아버지 오억령 일가의 묘단은 동복 오씨 묘역 맨 위 오른쪽에 묘단이 조성되어 있다. 분묘 당시의 석물이 훼손되어 방치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오시만 묘의 석물 중 두 동자가 원형의 향로석을 받드는 특이한 형태의 향로석은 분묘 당시의 석물로, 조선 시대의 분묘 문화와 석물 예술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