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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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思斅墓 |
영어공식명칭 | HongSahyo Myo|Tomb of HongSahy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명희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아치울 남양 홍씨 묘역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홍사효의 묘.
[개설]
홍사효(洪思斅)[?~?]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할아버지는 홍윤우(洪允祐)이고, 아버지는 홍덕수(洪德壽)이다. 1602년(선조 35)에 평산 부사에 임명되었고, 2년 후 파주 목사로 재임 중 임무 소홀로 파직되었다. 1606년에 충주 목사에 임명되었으나 업무를 감당할 능력이 없어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가 1612년(광해군 4)에 임천 군수에 임명되었다.
[위치]
홍사효 묘는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아치울 남양 홍씨 묘역에 있다. 묘역 입구에 '남양 홍씨 익산군파 휴휴당계 선영'이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묘역 정상까지 올라가서 홍응의 묘 오른쪽으로 조금 떨어진 다른 능선에 묘가 있다.
[변천]
홍사효 묘가 있는 남양 홍씨 묘역은 2012년 2월 23일 대대적인 사초 공사를 하고 표지석을 건립했다.
[형태]
홍사효 묘는 한강이 보이는 남서향이고 부인 광주 김씨와 쌍분으로 되어 있다. 사성(莎城)[무덤 위에 반달모양으로 둘러막아 쌓은 둑]은 흔적만 있고 봉분에는 둘레돌[호석(護石)]이 둘러져 있다. 봉분 앞에는 월두형 묘갈(墓碣)[묘 앞에 세우는 머리 부분을 둥글게 굴린 작은 비석]이 대좌 위에 놓여 있고 대좌에는 안상문을 조각한 흔적이 있다. 묘갈 앞에는 혼유석(魂遊石)[영혼이 나와서 놀게 하기 위하여 무덤의 앞에 설치해 놓는 직사각형의 돌]·상석(床石)[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하여 넓적한 돌로 만들어 놓은 상]·향로석(香爐石)[무덤 앞에 향로를 올려놓는 네모반듯한 돌]이 있고 상석 좌우에 장대석으로 쌓은 단이 있다. 많은 부분이 흙에 묻혀 있다. 단의 양옆으로 문인석(文人石)[문관의 형상으로 묘 앞에 세운 돌] 한 쌍이 있고 망주석(望柱石)[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은 없다. 둘레돌을 제외한 석물은 분묘 당시의 것이다.
[금석문]
홍사효 묘의 비석 전면에는 '증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행가선대부장례원판결사홍공지묘 증정경부인광주김씨지묘(證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行嘉善大夫掌隷院判決事洪公之墓 贈貞敬夫人光州金氏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홍사효 묘가 있는 남양 홍씨 묘역은 아차산 능선을 종렬로 길게 정리하여 장대석으로 단을 만들어 단위 묘를 경계 짓는다. 6기의 묘가 들어서고 묘역이 차자 묘역 옆 능선으로 확장하여 4기의 묘를 앉혔다. 사초가 없는 헐벗은 산에 묘를 조성한 것 같은 형상이었으나 2012년 2월 23일 대대적인 사초 공사를 하였다.
[의의와 평가]
남양 홍씨 묘역은 성종의 공신당에 배향된 명문가 휴휴당 홍응의 직계 가계 묘역이다. 토양이 안 좋아 사초가 헐벗었지만 단촐한 석물과 둘레돌 없는 봉토분은 가문의 명성과 다르게 소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