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3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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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思斅 |
영어공식명칭 | Hong Sahyo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미엽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아버지는 홍덕수(洪德壽)이고, 할아버지는 홍윤우(洪允祐)이다.
[활동 사항]
홍사효(洪思斅)[1555~1632]는 1602년(선조 35) 황해도 평산 부사(平山府使)에 임명되었고, 1604년 파주 목사(坡州牧使)로 재임하던 중 체포한 절도 및 살인 혐의자에 대한 조사를 소홀히 하여 풀어주었다는 신율(申慄)의 건의로 파직되었다. 1606년 호조 정랑으로 내직을 역임하였고, 1607년 충주 목사가 되었지만, 사헌부에서 적격자가 아니라고 탄핵하여 파직되었다. 1612년(광해군 4) 임천 군수(林川郡守)에 임명되었는데, 당시 충홍 감사(忠洪監司) 박이서(朴彝敘)가 장계를 올려 홍사효를 포상할 것을 청하여 옷감 한 벌을 하사받았다. 한편 사간원과 사헌부 등에서는 상(償)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계속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 않았다. 1616년 공주 목사로 재임 중 쌀 비축에 공로가 있어 숙마 1필을 하사받았다. 다음 해 춘천 부사로 부임하였는데 1619년 영건 도감(營建都監)이 필요한 재목을 홍사효가 잘못 보내었다고 아뢰자 죄과를 추궁당했다. 그해 6월 성천 부사(成川府事)로 부임하였다.
[묘소]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