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3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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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宣祖穆陵修改儀軌 |
영어공식명칭 | Seonjo Mokreung Sugae Uigwe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지현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선조의 능인 목릉(穆陵)을 수리한 내용을 기록하여 1609년에 간행한 의궤.
[개설]
『선조목릉수개의궤(宣祖穆陵修改儀軌)』는 1609년 선조(宣祖)의 능인 목릉의 병풍석(屛風石)[능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을 수리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개수도감(改修都監)의 관원 명단, 목릉 수리에 관한 조정의 논의, 작업에 참여한 공장(工匠)과 작업 물품 등 목릉 수리 작업 전반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실려 있다. 목릉은 현재 구리 동구릉 내에 있으며, 십이지신상과 구름무늬가 조각된 병풍석을 볼 수 있다.
[저자]
『선조목릉수개의궤』는 목릉의 수리를 위해 임시로 설치된 개수도감에서 작성하였다. 도감의 총 책임자인 도제조(都提調)는 의정부(議政府) 우의정(右議政) 심희수(沈喜壽)가 맡았다.
[편찬/간행 경위]
『선조목릉수개의궤』는 목릉의 수리가 끝난 후 자세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편찬하여 1609년에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선조목릉수개의궤』는 1책 40장의 필사본으로 전체 크기는 가로 32.5㎝, 세로 47.1㎝이다. 본문 종이는 저주지(楮注紙)[왕실이나 중앙 관아에서 문서 작성이나 왕실 배포용 책자를 만들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닥나무 껍질로 만든 두꺼운 종이]를 사용하였다. 본문 한 쪽에 12행, 행당 26자의 글자가 기록되어 있다.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는 '목릉수개의궤(穆陵修改儀軌)'이다.
[구성/내용]
『선조목릉수개의궤』는 별도의 목록이 없고 각 항목별 제목 분류가 명확하지 않은 등 후기 의궤에 비해 체계가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전체 구성을 살펴보면 좌목(座目), 계사(啓辭), 도감 각원 이하 매 오일 산료식(都監各員以下每五日散料式), 각소의궤(各所儀軌), 상격(賞格) 등이 실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앞의 좌목에는 도제조, 제조(提調), 도청(都廳), 낭청(郎廳), 감역(監役) 등 담당 관원들의 관직 성명이 기록되어 있다. 우의정 심희수가 도제조로, 좌참찬(左參贊) 이준(李準), 우참찬(右參贊) 이시언(李時彦), 한성부(漢城府) 좌윤(左尹) 심열(沈悅) 등 세 사람이 제조로 작업을 주관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계사는 목릉의 수리와 관련하여 도감에서 왕에게 올린 글과 그에 대한 왕의 비답(批答)[임금이 상주문의 말미에 적는 가부의 대답]을 기록한 것이다. 목릉의 병풍석이 파손된 것을 보고하자 왕이 이를 수리할 것을 명하면서 도감이 설치되어 수리가 진행되었다.
도감 각원 이하 매 오일 산료식은 도감의 각 관원이 매달 5일에 지급받은 쌀과 부식비, 도척(刀尺), 말 등을 기록한 것이며, 각소의궤는 삼물소(三物所), 석물소(石物所), 수리소(修理所), 수석소(輸石所) 등 개수도감에 속한 부속 기구가 담당한 일과 물품을 기록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격에는 목릉의 수리를 담당한 도감 관원들에게 내린 상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선조목릉수개의궤』는 17세기 왕릉의 수리 절차에 관해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며, 현존하는 의궤 중 비교적 이른 시기의 것으로 의궤 체계가 정형화되기 이전의 양상을 볼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동일종 의궤 중 유일본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