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목릉천봉도감의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3019
한자 宣祖穆陵遷奉都監儀軌
영어공식명칭 Seonjo Mokreung Cheonbongdogamuigwe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630년 - 『선조목릉천봉도감의궤 간행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7년 6월 - 『선조목릉천봉도감의궤 유네스코(UNESCO) 세계 기록 유산 등재
소장처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전적
간행자 천릉도감
권책 1책
행자 12행 18자[자수부동(字數不同)]
규격 36.3×47.7㎝
어미 상하 내향 삼엽화문 어미
권수제 숭정삼년경오십이월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목릉(穆陵)의 천봉에 관한 일을 기록하여 1630년에 간행한 의궤.

[개설]

『선조목릉천봉도감의궤(宣祖穆陵遷奉都監儀軌)』선조의 능인 목릉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는 일을 기록한 의궤이다. 천봉(遷奉)이란 왕의 능을 옮기는 것을 말한다. 현재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선조 목릉 천릉도감의궤(宣祖穆陵遷陵都監儀軌)』가 능이 옮겨질 곳에 새로이 능을 조영하는 일을 기록한 의궤라면, 『선조목릉천봉도감의궤』는 능의 이동 과정을 주로 다루고 있다.

[저자]

『선조목릉천봉도감의궤』는 능의 천봉을 위해 임시로 설치된 천릉도감(遷奉都監)에서 간행하였다. 도감의 총 책임자인 총호사(摠護使)는 좌의정(左議政) 김류(金瑬)가 맡았다.

[편찬/간행 경위]

『선조 목릉 천봉도감 의궤』는 천봉이 끝난 후 자세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편찬하여 1630년에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선조목릉천봉도감의궤』는 1책 23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본의 크기는 가로 36.3㎝, 세로 47.7㎝이며, 본문은 저주지(楮注紙)[왕실이나 중앙 관아에서 문서 작성이나 왕실 배포용 책자를 만들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닥나무 껍질로 만든 두꺼운 종이]를 사용하였다. 본문 한 쪽에 총 12행, 행당 18자의 글자가 대체로 기록되어 있다. 판심(版心)[접어서 양면으로 나눌 때 책장 가운데 접힌 곳] 에는 상하 내향 삼엽화문 어미(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2개 어미 가운데 위 어미가 아래쪽, 아래 어미가 위쪽을 향하며, 어미 부분에 3개의 화문이 있는 형태]를 그렸으면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는 '숭정삼년경오십이월(崇禎三年庚午十二月)'이다.

[구성/내용]

『선조목릉천봉도감의궤』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의궤로 후기 의궤와 같이 정비된 체제를 갖추고 있지는 않다. 내용은 크게 도청의궤(都廳儀軌)와 각방의궤(各房儀軌)로 나뉘는데, 도청의궤는 별도의 목록 없이 계사(啓辭), 내관 품목(來關稟目), 반차도(班次圖)[궁중의 각종 행사 장면을 그린 의궤도]로 구성되어 있다. 계사에는 조정에서 천릉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이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으며, 내관 품목에는 관련 관서간 오고 간 공문서를 수록하고 있다. 반차도는 능을 옮기는 모습이 담긴 채색 그림이다. 각방의궤는 도감 휘하의 각 방의 관원, 담당 업무, 업무 처리 상황 등을 정리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선조목릉천봉도감의궤』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의궤이며 1건만이 남아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더욱 높다. 또한 목릉의 이장을 둘러싼 조정의 논의 전개 과정은 당시 정치적 상황을 보여 주는 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으며, 능의 이장과 관련하여 소요된 물품과 그 제작에 관한 내용도 잘 남아 있어 당시의 사회상, 경제상을 살피는 데도 주요한 자료가 된다. 2007년 6월 제8차 유네스코(UNESCO) 기록 유산 국제 자문 위원회에서 조선 왕조의 의궤 전체를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하여, 『선조목릉천봉도감의궤』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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