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30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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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車重樂墓 |
영어공식명칭 | ChaJungrak Myo|Tomb of ChaJungra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 570[망우동 산57-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남선 |
[정의]
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대중 가요 가수 차중락의 묘.
[개설]
차중락(車重樂)[1942~1968]은 장충 초등학교와 경복 중학교·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한양 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던 차중락이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동화 백화점[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4층의 음악 감상실에서 접하게 된 팝과 재즈에 심취하면서부터이다. 사촌형 차도균[키보이스 멤버 중 한 명]의 권유로 1963년 10월 ‘키보이스’에 합류했으며, 키보이스는 1965년 해운대에서 한국 락 그룹 사상 처음으로 단독 야외 공연을 해 한국의 ‘비틀즈’ 혹은 ‘비치 보이스’로 불리며 열광적인 환호를 받는 등 키보이스와 차중락의 인기는 높았다. 1966년 실연을 겪은 차중락은 지인이 역시 실연의 아픔 속에 쓴 자작시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엘비스의 히트곡 「Anything that’s part of you」에 가락에 붙여 발표했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은 반주 음악의 템포와 느낌을 함께 표현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드문 동시 녹음을 시도하여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1967년 차중락은 신세기 레코드의 전속 작곡가 홍현걸의 주선으로 솔로로 데뷔하였고, 같은 해 TBC[동양 방송]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인 「사랑의 종말」이 크게 히트를 쳐, 동갑내기 라이벌 배호[1942~1971]와 함께 트로트와 팝으로 가요계를 양분하는 등 새로운 스타로 각광을 받았다. 1968년 9월 29일, 서울특별시의 동일 극장 무대 위에서 고열로 쓰러진 후 뇌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위치]
차중락 묘는 망우 공원 관리 사무소를 지나 우측 순환로 방향에 있다[묘지 번호 105689].
[변천]
차중락 묘는 1968년 11월 10일에 조성되었다.
[형태]
차중락 묘는 토분 형태로 아담하게 조성되어 있고, 묘 앞에는 자연석에 새겨진 비석이 서 있다.
[금석문]
차중락 비문 전면에는 '追慕卑[추모비] 낙엽의 뜻 1969. 2. 16. 시 조병화 세월은 흘러서 사라짐에 소리 없고 나무닢 때 따라 떨어짐에 소리 없고 생각은 사람의 깊은 흔적 소리 없고 인간사 바뀌며 사라짐에 소리 없다 아, 이 세상 사는 자, 죽는 자, 그 풀밭 사람 가고 잎 지고 갈림에 소리 없다 형 차중경 씀' 이라 쓰여 있다. 아랫부분에는 차중락 기념 사업회 회원의 명단이 적혀 있다.
[현황]
차중락 묘비의 글 「낙엽의 뜻」은 조병화 시인이 짓고, 그의 맏형 차중경이 썼다. 묘비의 아랫부분에는 당시의 유명 배우들과 가수들의 이름이 나와 있다. 차중락이 사망한 다음 해부터 차중락을 기리는 낙엽상이 제정되어 그해 가장 뛰어난 신인들에게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