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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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宗 |
영어공식명칭 | Munjong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수진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현릉(顯陵)에 묻힌 조선 전기의 왕.
[개설]
문종(文宗)[1414~1452]은 조선의 제5대 왕으로, 이름은 향(珦), 자는 휘지(輝之), 시호는 공순(恭順)이다.
[가계]
문종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1414년(태종 14) 10월 3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세종(世宗)이고, 어머니 소헌 왕후(昭憲王后)는 청천 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의 딸이다.
[활동 사항]
문종은 1414년에 훗날 세종이 되는 충녕 대군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421년(세종 3) 10월 27일 여덟 살의 나이로 세자에 책봉되었고, 12월 25일에는 입학례(入學禮)를 치루고 26일에 첫 서연(書筵)[조선 시대에 왕세자에게 경서를 강론하던 자리]을 실시하였다.
1427년(세종 9) 4월 9일 상호군 김오문(金五文)의 딸을 휘빈(徽嬪)으로 봉하였다. 그러나 1429년(세종 11)에 휘빈이 문종의 사랑을 얻기 위해 여러가지 비술 등을 쓰다 발각되어 빈궁의 자리에서 쫓겨났다. 10월 15일 봉려(奉礪)의 딸을 순빈(純嬪)에 책봉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세자와 세자빈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후사를 걱정한 세종은 권전(權專), 정갑손(鄭甲孫), 홍심(洪深)의 딸을 승휘(承徽)[세자궁에 딸린 여관(女官)으로서 종4품 내명부]로 선발하여 세자의 후궁으로 삼았다. 1436년(세종 18) 두 번째 세자빈 순빈 봉 씨가 양원[권전의 딸로 승휘에서 진봉됨] 권씨의 회임에 질투하여, 자신도 회임했으나 유산이 되었다는 거짓말을 한 것과 궁녀 소쌍(召雙)과의 추문 등이 드러나 자리에서 내쳐졌다. 이미 세자와의 사이에 딸을 출산한 적이 있는 양원 권씨를 1437년(세종 19) 2월 28일 세 번째 세자빈으로 책봉하였다. 양원 권씨가 훗날 단종과 경혜 공주의 어머니가 되는 현덕 왕후(顯德王后)이다. 1441년(세종 23) 7월 23일 세자빈 권씨가 자선당(資善堂)에서 원손을 낳았으나, 원손을 낳은 지 하루 만에 2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세종의 안질이 악화되면서 1445년(세종 27)부터 세자의 섭정이 시작되었다. 1446년(세종 28)에 어머니 소헌 왕후가 52세로 세상을 떠나자 세종은 사대 교린, 변경에 관한 일, 문무 4품 이상의 제수 등의 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세자에게 맡겨 결정하도록 하였다.
1450년(세종 32) 2월 17일 세종이 54세로 사망하고, 2월 23일 문종이 즉위하였다. 7월 20일에는 훗날 단종이 되는 왕세손 이홍위(李弘暐)를 왕세자로 책봉하였다. 문종은 세자 시절부터 종기로 고생하였는데 즉위 이후 종기가 더욱 심해졌고, 1452년(문종 2) 5월에는 정무를 일체 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5월 14일 경복궁 강녕전(康寧殿)에서 39세로 세상을 떠났다. 문종은 30년 간 세자 자리에 있었고, 즉위 전 거의 10년 간 세종을 보필하며 국정을 경험하였다. 세종의 건강이 악화된 말년에는 세자로 하여금 정무를 결정하게 하여 국정 운영의 경험이 풍부했던 준비된 왕이었다. 하지만 재위에 오른 후 불과 2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저술 및 작품]
1452년(문종 2)에 김종서 등이 편찬한 『고려사(高麗史)』를 편년체로 정리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가 완성되었다.
[묘소]
문종의 능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경내에 있는 현릉이다. 1513년(중종 8)에 안산에 있던 현덕 왕후의 능을 옮겨 함께 조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