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20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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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沖 |
영어공식명칭 | Lee Chung |
이칭/별칭 | 거용(巨容),칠택(七澤)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미엽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개설]
이충(李沖)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거용(巨容), 호는 칠택(七澤)이다. 조선 시대 선조(宣祖)와 광해군(光海君) 대에 여러 관직을 역임한 문신이다.
[가계]
이충은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의 7대손으로, 아버지는 이정빈(李廷賓)이며, 할아버지는 이량(李樑)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대(李薱)이다. 외할아버지는 한수(韓洙)이고, 장인은 최희령(崔希齡), 동생은 이명(李溟), 아들은 이민수(李敏樹)이다.
[활동 사항]
이충은 1600년(선조 2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01년 무장 현감(茂長縣監)을 거쳐 1602년 문겸선전관(文兼宣傳官)이 되었고, 1606년엔 성천 부사(成川府使)가 되었다. 이듬해인 1607년 형조 정랑과 통례원 상례(通禮院相禮)를 거쳐 광주 목사(廣州牧使)가 되었다. 1609년(광해군 1) 대간으로부터 간신의 손자라 하여 탄핵을 받고 나주 목사(羅州牧使)로 좌천되었다가 사도시 정(司䆃寺正)으로 춘추관 편수관을 겸직하면서 『선조실록(宣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612년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고, 다음해 대사간과 이조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614년 수원 부사가 되었고, 1616년 선수도감 제조와 호조 판서를 거쳐 1618년 좌부 빈객과 동지경연사 등을 역임하였다.
[묘소]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다.
[상훈과 추모]
이충은 1616년 선수도감 제조로서 담비 가죽으로 만든 모엄(帽掩)을 하사받았고, 1619 년 우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