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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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景陵 |
영어공식명칭 | Gyeongreung |
이칭/별칭 | 헌종 경릉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9-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민정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조선 헌종·효현 왕후·효정 왕후의 능.
[개설]
경릉(景陵)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경내에 있는 조선의 국왕 헌종(憲宗)[1827~1849]과 헌종의 비 효현 왕후(孝顯王后)[1828~1843], 그리고 계비(繼妃) 효정 왕후(孝定王后)[1831~1903]의 능이다. 헌종은 조선의 제24대 국왕으로, 이름은 환(奐)이다. 순조(純祖)의 손자이자 추존왕 익종(翼宗)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조만영(趙萬永)의 딸 신정 왕후(神貞王后)이다. 1830년(순조 30)에 왕세손에 책봉되었고, 1834년 순조가 사망하자 8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즉위 초에는 대왕대비 순원 왕후(純元王后)가 수렴청정하였다. 헌종의 재위 기간은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 정치로 인해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로 평가되며, 사회적으로도 연이은 수재(水災)와 삼정의 문란, 천주교 박해 등으로 민심이 어수선했던 시기였다. 헌종은 1849년 2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효현 왕후의 본관은 안동으로, 아버지는 영흥 부원군(永興府院君) 김조근(金祖根)이다. 효현 왕후는 1837년(헌종 3) 왕비로 간택되어 헌종과 가례를 올렸으나 1843년 16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효정 왕후의 본관은 남양으로, 익풍 부원군(益豊府院君) 홍재룡(洪在龍)의 딸이다. 효현 왕후가 사망한 후 1844년 헌종과 가례를 올리고 왕비에 책봉되었다. 1849년 헌종이 사망하고 철종(哲宗)이 뒤를 잇자 대비가 되었고, 1857년(철종 8) 순조(純祖)의 비 순원 왕후가 사망하자 왕대비(王大妃)가 되었다. 1897년 대한 제국이 선포되면서 최초의 태후가 되기도 했다. 효정 왕후는 1904년 경운궁에서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위치]
경릉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경내에 있다. 경릉이 있는 자리는 원래 선조(宣祖)의 목릉(穆陵)이 있던 자리이다. 선조의 목릉을 다른 곳으로 옮긴 후, 효현 왕후가 사망하자 이곳에 경릉을 조성하였다.
[변천]
경릉이 위치한 곳은 본래 목릉이 있던 자리로, 물이 차서 좋지 않다고 하여 1630년(인조 8)에 목릉을 현재의 자리로 옮긴 바 있다. 그러나 막상 목릉을 옮기기 위해 땅을 파 보니 물기가 없었으므로, 1843년 효현 왕후가 사망한 후 이곳에 능을 조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1849년 헌종의 능과 1904년 효정 왕후의 능이 차례대로 조성되어 현재에 이른다.
[형태]
경릉은 세 개의 봉분이 나란히 조성된 삼연릉(三連陵)으로, 조선 왕릉 가운데 유일한 형태이다. 능에서 정자각을 바라보고 섰을 때 가장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헌종, 효현 왕후, 효정 왕후의 능이다. 이는 오른쪽에 왕이 있고 왼쪽에 왕비가 있다는 우왕좌비(右王左妃)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봉분에 병풍석은 세우지 않았으며, 난간석은 각각의 봉분을 둘러싸고 있으나 서로 연결된 형태이다. 각 능침 앞에 혼유석이 따로 놓여 있으나, 장명등·석양·석호·무석인·문석인 등은 각각 설치하지 않고 세 능이 함께 공유하고 있다.
상계·중계·하계 등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지 않고 상계와 하계,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이는 조선 후기 조성된 조선 왕릉의 특징이다.
[금석문]
경릉의 정자각 오른편에 있는 비각 안에는 1908년 건립된 표석이 남아 있다. 경릉이 총 세차례에 걸쳐 조성되었으므로, 표석 또한 그에 따라 변화하여 1904년 효정 왕후 사망 시에는 헌종·효현 왕후·효정 왕후의 합봉 표석이 세워졌다. 현재 남아 있는 표석은 1908년 헌종과 효현 왕후, 그리고 효정 왕후를 황제와 황후로 추숭한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기존의 합봉 표석의 내용을 갈아 없애고 다시 새긴 것이다. 전면에는 전서체로 '대한헌종성황제경릉효현성황후부좌효정성황후부좌(大韓憲宗成皇帝景陵孝顯成皇后祔左孝定成皇后祔左)'라 새겨져 있다.
[현황]
경릉이 속한 구리 동구릉 전체가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2009년 6월에는 조선 왕릉 전체가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경릉은 문화재청 조선 왕릉 관리소 동부 지구 관리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경릉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 왕릉 중에서도 삼연릉의 형태로 조성된 유일한 능으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조선 왕실의 문화와 왕릉 연구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