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30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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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世德墓 |
영어공식명칭 | Ham Sedeok Tomb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산84-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남선 |
[정의]
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 극작가 함세덕의 묘.
[개설]
함세덕(咸世德)[1915~1950]은 1936년 21세의 나이로 『조선 문학』에 희곡 「산허리」로 등단하고, 1939년 동아 일보사가 주최한 제2회 연극 경연 대회에서 「도념」[동승의 원작]의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대표적 어용 연극 단체인 ‘현대 극장'에 가담하여 일제의 지원 병제를 선전하여 친일 성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광복 후 1947년 가을에서 1948년 봄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미군정이 정치 연극을 금지하자 송영,황철 등과 같이 월북하였다. 이후 1950년 6월 29일 6·25 전쟁 시 북한의 종군 기자가 되어 가족이 있는 서울로 오는 길에 수류탄 사고로 사망하였다.
[위치]
망우 공원 관리사무소를 지나 좌측 순환 방향으로 가다 조봉암 묘 앞의 연보비를 지나면 동원천 약수터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에서 아래로 향하면 함세덕의 묘가 있다[묘지 번호 109511].
[변천]
함세덕 묘는1950년 6월 29일에 조성되었다.
[형태]
함세덕의 묘는 토분 형태로 조성되어 있고, 묘 오른쪽 옆에 비석이 있다.
[금석문]
비문 전면에는 '양근함공세덕지묘(陽根咸公世德之墓)'라고 쓰여 있고, 후면에는 '1915년 5월 23일 강화에서 3남 3녀 중 2남으로 출생, 1950년 6월 29일 서울에서 전사했다. 극작가. 1936년 『조선 문학』지에 「산허구리」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 『동승(童僧)』으로 극연좌상(劇硏座賞)을 수상 「해연(海燕)」으로 신춘문예에 입선, 「무의도 기행(無衣島紀行)」, 「추장 이사베라」, 「기미년 3월 1일」, 「태백 산맥」, 「에밀레종」, 「산적」, 「대통령」 등 24편의 작품을 남겼다. “삶은 누군가의 손을 붙잡는 일이고,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다” -『동승』 중에서'라고 쓰여 있다.
[현황]
함세덕 묘는 부인과 쌍봉으로 되어 있고, 주변에는 부모와 동생의 묘가 함께 조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