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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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峨嵯山城 |
영어공식명칭 | Achasanseong |
이칭/별칭 | 아단성(阿旦城),아차성(阿且城),장한성(長漢城)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김성신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에 있는 삼국 시대에 축조된 산성.
[위치]
아차산성은 아차산의 줄기가 한강 변에 이르는 마지막 봉우리의 워커힐 호텔 부근에 있는데,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과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에 걸쳐 있다. 남쪽으로는 서울특별시 강남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북쪽으로는 아차산 및 용마산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이다. 산성의 대부분 지역은 광진구에 속하며, 성벽 북쪽과 장대지 등 일부가 경기도 구리시에 속한다.
[변천]
아차산성이 있는 아차산과 한강 유역은 삼국 시대 때 고구려·백제·신라가 각축을 벌이던 곳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286년 백제 책계왕(責稽王) 때 축성되었고, 396년에 고구려 광개토왕이 공격하여 점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475년에는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패하고 이곳 아차산성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1962년 워커힐 호텔이 건립되면서 일대가 호텔 부지에 편입되었으며, 1973년 5월 25일 사적 제23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1994년 구리시와 구리 문화원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1997년과 1998년에 국립 문화재 연구소와 명지 대학교 부설 한국 건축 문화 연구소에서 북서쪽 성벽 노출 지역 보수 구간 실측 및 수습 발굴 조사와 기초 학술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어 1999년에는 서울 대학교 박물관과 서울 대학교 인문학 연구소에서 성벽은 물론 성 내부 전 지역에 대한 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한편, 2014년 9월 26일 광진구[주관]와 한강 문화재 연구원[주최]에서 '아차산 일대 보루군의 역사적 가치와 보존 방안'을 주제로 학술 회의를 개최하였으며, 16년 동안 중단되었던 발굴 조사도 재개되어 한강 문화재 연구원에서 2015년 11월 4일부터 발굴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형태]
아차산성의 평면 형태는 부정 육각형이며, 성곽의 전체 길이는 1,125m, 평균 높이는 10m 정도이며, 성의 내부 면적은 63,810㎡[19,303평]이다. 산성 가운데에는 계곡이 있으며, 성벽이 계곡을 껴안고 있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한편 성의 가장 높은 곳은 장대지가 있는 서북단으로 해발 203,4m이고, 가장 낮은 곳인 남단은 해발 122m이다.
[현황]
몇 차례의 지표 조사와 비록 일부지만 시굴 조사를 통해 성 내부에서 많은 건물지와 온돌, 배수로, 연지(蓮池) 등이 확인되었으며,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건물지는 기단만 남아 있는데, 지름 1m 내외의 타원형 주춧돌 위에 축조하였으며, 외곽에 기단 석축을 두른 대규모 건물로 확인되었다. 유물 중 토기는 각종 굽다리 접시[고배(高杯)]·항아리·굽 달린 사발[대부완(臺附碗)]·사발·동이·시루·뚜껑·접시·각병(角甁) 등 945점이 출토되었으며, 철기는 88점이 수습되었다. 이 외에 명문(銘文) 기와를 포함해 수천 점의 기와가 출토되었다. 현재까지 출토된 토기의 경우 전형적인 신라의 특징을 보이는 것들이며, 고구려와 백제의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 수습된 철기는 화살촉을 제외하면 일상생활과 관련된 것이 다수이다. 기와는 평기와와 막새기와 및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조사되었는데, 아차산성에 중요한 건물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의의와 평가]
아차산성은 고구려·백제·신라가 치열하게 각축을 벌였던 한강 유역의 중심에 있는 산성이다. 아직은 전면적인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아서 신라의 유적이나 유물만 확인되지만, 『삼국사기』를 비롯한 여러 문헌의 기록을 감안할 때 고구려나 백제와의 관련성이 높다. 따라서 더 많은 조사와 연구가 과제로 남아 있지만 현재까지의 결과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고대사 중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삼국 시대의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