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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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何瑟羅州 |
영어음역 | Haseullaju |
영어의미역 | Haseullaju Administrative District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홍영호 |
[정의]
신라시대 울진 지역이 속했던 지방통치구역.
[개설]
신라가 진출하기 전 지금의 강릉 일대와 울진이 포함된 지역에는 예국(濊國)이라 불리는 토착세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후 신라의 세력권으로 들어간 예국은 삼척에 있던 토착세력과 함께 동해안 지역의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하였다. 하슬라주(何瑟羅州)는 512년(지증왕 13)에 예국의 세력권에 설치한 지방 통치구역이다.
[제정경위 및 목적]
주(州)는 특정 지역명이 덧붙여져 있고, 신라의 대외 팽창 과정에 따라 설치·이동되는 것으로 보아 군주(軍主)가 지휘하는 군단(軍團)이 주둔하는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곧 하슬라주를 설치한 것은 강릉과 울진 일대를 북진을 위한 군사적 거점이자 전진기지로 확보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관련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보면 397년(내물왕 42)에 하슬라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림으로 죄수를 사면하고 일 년간 조세를 면제해 주었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울진 지역이 신라의 영토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 신라는 392년(내물왕 37)에 고구려에 실성(實聖)을 인질로 보내고, ‘중원고구려비(中原高句麗碑)’에도 나와 있듯 ‘신라토내당주(新羅土內幢主)’로 표현되는 고구려 군대가 신라의 영토 안에 주둔하고 있었다. 당시의 고구려는 신라의 왕위 계승에 간여함은 물론 신라를 정복하려는 의도도 엿보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일본서기(日本書紀)』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신라와 백제의 영토 중의 일부를 본래 ‘고구려군현(高句麗郡縣)’으로 기록하였는데, 실직과 하슬라로 연결되는 동해안 지역도 ‘고구려군현명(高句麗郡縣名)’이 나오므로 한때 고구려의 지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고구려의 간섭을 물리치려는 신라의 노력으로 양국은 서로 충돌을 하게 된다. 즉 450년(눌지왕 34) 하슬라성주 삼직(三直)이 출병하여 실직(悉直)[울진·평해 일부를 포함한 삼척 지방]에서 사냥을 하는 고구려 변장(邊將)을 죽인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에 고구려의 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에 침입하려다가 신라왕의 사과로 되돌아가기도 하였다.
또 468년(자비왕 11)에는 고구려와 말갈의 연합군이 실직성을 공함(攻陷)하자, 하슬라주에서는 15세 이상의 주민을 징집하여 니하(泥河)에 성을 쌓기도 하였다. 이외에 소지왕 대에도 고구려가 두 차례나 하슬라주와 실직주 등이 있는 신라 북변을 침입하였으나 신라가 이를 격퇴하였다.
[변천]
진흥왕 대에 신라의 동북쪽 국경이 함경남도 지방까지 확대되면서 639년(선덕여왕 8) 하슬라주를 파하고 대신 북소경(北小京)이 설치되어 군사 체제에서 행정 중심 체제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658년(무열왕 5) 말갈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이유로 북소경이 혁파되고 다시 군사 체제인 주(州)로 환원되었다가, 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를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이웃한 실직주 등과 묶여서 명주(溟州)가 되었다.
[의의와 평가]
주군현의 설치는 신라의 지방제도 발달사에서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후 신라는 하슬라주와 이웃한 실직주를 동해안 지역 최고의 군사거점지역으로 만들어 북진을 대비한다. 한편, 지방 행정제도의 본격적인 실시는 전국을 지방제도로 편제하여 통치력을 강화하고 복속지와 복속민을 민(民)으로 대우하여 신라가 본격적으로 대외팽창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