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이 백두대간의 산맥으로 가로막힌 울진에서 서울로 가기 위한 길은 남쪽과 북쪽 해안도로를 따라 연결된 도로를 통해서이다. 서쪽으로는 굽이굽이 산길을 넘어야 하는데, 열두 개나 되는 산길을 넘어 봉화를 거쳐 서울로 향하는 그 길이 바로 십이령이다. 십이령은 울진을 동서 방향으로 연결하는 도로로 그 출발지점은 울진, 죽변, 흥부에서 각각 시작된다. 출발 지점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
십이령 고개길은 자동차만 다닐 수 없는 길이다. 1968년 울진·삼척에 무장공비가 침투했을 때 이를 소탕하기 위해 미군들이 지도를 들고 두천에 와서 길을 찾았다고 한다. 분명 지도에는 길이 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자동차가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십이령 고개길은 사람이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짐만이 오고가는 그런 길이었다. 선질꾼들은 흥부장과 울진장에서 생산된 것을...
십이령 고개길은 울진을 동서로 잇는 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이용한 길이다. 몇 번의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봉화로 서울로 간 이 길을 선질꾼들은 수없이 왔다갔다 반복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지나가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선질꾼의 발길이 멈춘 지 30년이 넘었건만 고개길은 아직도 길을 밟을 주인을 기다리는 듯 쓸쓸하지만 넓어 보인다.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십이령을 넘나들며 울진과 봉화 지역을 누볐던 선질꾼에 대한 명칭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등금쟁이, 바지게꾼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선질꾼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행동과 또는 생김새에서 비롯된 새로운 용어이다. 김도현은 「울진 12령을 넘나든 선질꾼과 그 문화연구」에서 이들을 부르는 명칭은 선질꾼이었으며, 바지게꾼은 후대에 새로 생성되었고, 등금쟁이는 일부 마을에서...
두천1리 끝나는 시점 개울가에 위치한 내성행상불망비는 1890년(고종 27) 울진과 봉화를 왕래하던 선질꾼들의 지위격인 접장 전한조와 반수 권재만이 그들의 상행위를 도와준 것에 대해 은공을 기리고자 세운 비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비를 선질꾼비라 부른다. 비에는 ‘내성행상불접장정한조불망비(乃城行商接長鄭韓祚不忘碑)’와 ‘내성행상반수권재만불망비(乃城行商班首權在萬不忘碑)’라...
선질꾼이 지난 자리는 도부꾼이 이어 받는다. 도부꾼은 주로 여자들이 하는데, 한국전쟁이 발발 후 미망인들이 많이 생겨나고 생계를 위해 그들은 울진의 생산물을 가지고 직접 십이령을 넘어 각종 곡식으로 바꿔 시장에 내다 팔았다. 한국전쟁이 발발 후 남성들로 이루어진 선질꾼의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 자리는 대신 전쟁에서 살아남은 하지만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도부꾼들이 자리 잡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