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울진문화대전 > 울진의 마을 이야기 > 소광리 > 산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마을 > 광천은 골골 마을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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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국도를 따라 울진읍 방면을 가다 보면 불영사를 가는 36번 지방도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이 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 어느 듯 울진의 끝에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 때 소광리로 들어가는 표지판을 접한다. 소광리는 여기서도 다시 8㎞는 더 들어가야 하는 전형적인 산촌마을이다. 그나마 마을은 밀집되어 있지 않고 드문드문 흩어져 있어, 모퉁이를 돌아가면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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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리마을에서 주변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산이다. 이곳의 겨울은 울진의 다른 지역보다 길다. 3월이 되어도 음지에 녹지 않은 눈으로 마을 사람들의 생활은 4월이 되어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태백산맥과 광천이 만들어낸 좁은 부지에 마을 사람들은 옹기종기 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하였다. 이 또한 부족하여 고개 넘어 집 2채, 이 고개 넘어 집 3채 등 모여 살 수 없는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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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작성된 소광리 마을지도는 이곳의 마을은 한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는 표현보다는 말 그대로 뜨문뜨문 떨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소광1리에서 벗어나 소광2리 마을들은 산속 숨은 그림찾기하듯 집들이 숨어있으며, 그리고 각 집들은 각자가 부르는 골짜기 안에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그곳에 마을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사람들이 송이채취와 벌꿀, 그리고 산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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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리에 버스는 아침 9시에 한번, 오후 5시에 한 번 하루 두 번 왕래한다. 버스로 울진읍을 왕래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자가용 또는 외지로 나가는 사람의 차를 얻어 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버스도 소광리에 처음 들어오게 된 배경은 남다르다. 자동차가 귀한 시절 소광리 사람들에게 버스는 무엇보다도 필요한 교통수단이었다. 하루를 꼬박 걸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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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리의 광천은 앞을 흘러가는 광천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일제시대 이곳에 광산이 있었다고 하여 광천으로 알려져 있다. 말 그대로 빛나는 하천이 있는 마을로, 일제시대 이 일대 자수정이 대량 묻혀 있는 정보와 함께 일본인 ‘고야’로 알려진 이가 이곳에서 광산을 시작하였다고 전해진다. 처음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이곳에 광산이 들어서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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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2리에서 가장 넓은 평지는 과거 삼근초등학교 소광분교가 위치하던 곳이다. 지금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숙박시설로 바꾼 곳이지만 1995년까지 이곳은 소광리 일대 사람들이 다니던 학교였다. 1947년 소광초등학교가 설립되기 전 마을 사람들은 걸어서 12㎞ 떨어진 삼근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어른 학생들이 다니기에 이 길은 너무나도 멀었으며, 산악에 위치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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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리에서 태풍은 ‘계락’이라 부른다. 밖에서 ‘매미’, ‘사라’ 등 이름으로 태풍을 분류한다면 이곳에서는 태풍이 온 그 해 이름을 따서 ‘병자년 계락’이라 칭한다. 마을 사람들의 기억에 가장 무서운 계락은 ‘병자년 계락’ 즉 1958년 한국을 강타하고 엄청난 피해를 안겨다 준 사라호이다. 사라호는 비단 이곳에서만 피해를 입힌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 산사태로 사람들이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