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5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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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薈 |
영어음역 | Nam Hoe |
이칭/별칭 | 정일재(精一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최인표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정일재(精一齋). 할아버지는 현감 남봉우(南鳳羽)이고, 아버지는 단천군수 남득공(南得恭)이다. 어머니는 김을환(金乙環)의 딸이고, 부인은 풍산유씨로 직장 유정(柳汀)의 딸이다.
[활동사항]
1416년(태종 16) 진사시에 급제하여 생원이 되었다. 이 해 김맹헌(金孟獻)·이근백(李勤伯)·남간(南簡) 등과 더불어 동주계를 만들어 그 우두머리 노릇을 하였다. 동주계는 9개 성씨[10개 본관] 11명의 선비들이 서울에서 영남으로 내려오면서 서로 우의와 선비 정신을 갈고 닦기 위한 모임이었다.
동주계의 지명도는 조선 중기 울진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었던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이 발문으로 기렸고, 남제명(南濟明)·남형대(南衡大)·조술도(趙述道)·강필효(姜必孝)·남일우(南一祐)·남정환(南廷煥)·김규묵 등의 서문과 발문이 줄을 이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1420년(세종 2) 무과에 급제하였는데, 기록에 의하면 생원이 된 이후 줄곧 문과에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자 무과에 응시하여 단번에 급제하였다고 한다. 증산현감, 정의현감, 낙안군수, 창성부사, 제주목사를 역임하였다. 제주목사보다는 상위 직급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제주목사로 재임 중 혼인과 장례에 대한 예를 정하였고 어지러운 것을 모시는 집을 철폐하였으며, 백성을 못살게 하는 독한 무리를 끊고 가르쳐 착한 길로 인도하는 큰일을 하여 그곳 사람들이 홍화각(弘化閣)을 건립하고 추사비(追思碑)를 세워 청백리로 칭찬하였다.
1438년 호군(護軍)으로서 부사직(副司直) 조민(曹敏)과 함께 무릉도순심경차관(茂陵島巡審敬差官)이 되어 각기 의복 1습(襲)을 하사받고, 무릉도[울릉도]를 순찰하고 돌아왔다. 당시 붙잡은 남녀 66명과 울릉도에서 나는 사철(沙鐵)·석종유(石鍾乳)·생포(生鮑)·대죽(大竹) 등의 산물을 나라에 바쳤다.
[저술 및 작품]
종손가에 일고(逸稿)가 전한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 박금마을에 있다. 부인과 합장묘이다. 묘지명은 만곡(晚谷) 조술도(趙述道)가 짓고, 윤상(尹緗)이 썼다. 10월 상정일(上丁日)[음력으로 매달 첫째 드는 정(丁)의 날]에 모여 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