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5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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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季明 |
영어음역 | Nam Gyemyeong |
이칭/별칭 | 해운,금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전인식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유학자.
[활동사항]
어릴 때부터 어버이 병간호에 정성을 다하였으며, 고기를 잡아 공양하여 병에 차도를 얻었다고 한다. 18세 때 부친상을 당하여 여막살이를 하였고 그 후 모친상을 당하여서도 여막살이를 하였다. 25세 때 진사시에 등과하여 소문이 고향에 자자하였으며, 관찰사가 초빙하여도 나아가지 않았다.
이천(伊川)교수가 돌아가자 요승(妖僧) 학조(學祖)가 향교의 땅을 약탈하므로 남계명이 사법 당국에서 부당함을 질책하였으나 승려 학조가 굴복하지 않자 섬돌을 들어 던지려고 했다. 결국 학조는 두려워 도망갔다고 한다. 남계명이 상소하고 입궐하여 학조의 죄를 상세하게 진술하니 중종이 “한유천재(韓愈千載) 후에 유일(唯一) 남계명(南季明)”이라 하였다. 지조와 행실이 고결하여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아니하였다 하여 고을 사람들이 그를 금시(金矢)라 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종직(金宗直) 문하에 있으면서 지은 「화원창수시(花園唱酬詩)」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28년 상현사(尙賢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