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원전5·6호기 건설반대와 원전후보지 해제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648
한자 原電五六號基建設反對-原電候補地解除運動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명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울진원자력발전소 건설 반대 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95년 11월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96년 7월연표보기

[정의]

1995년부터 1996년까지 경상북도 울진 지역민들이 전개한 울진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 반대 운동.

[역사적 배경]

1995년 11월 울진 5·6호기 건설 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때는 특히 지방자치의 전면적 실시로 민선군수가 선임되었던 시기로, 이 운동은 군, 군의회, 울진원자력발전소건설및핵폐기장설치반대투쟁위원회 등 민관의 연합으로 전개되었다. 이 시기에 울진원전관련범군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환경영향 평가서 초안의 공람이 시작되자 울진원자력발전소건설및핵폐기장설치반대투쟁위원회에서는 11월 27일 군청대회의실에서 대책회의를 개최하고, 공청회 공고가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 하여 한국전력공사 측에 공청회 연기를 요청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울진군수 전광순은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한국전력공사 측과 협의하여 12월 21일 울진군민회관에서 공청회를 열기로 공고하였다.

울진원자력발전소건설및핵폐기장설치반대투쟁위원회에서는 11월 27일 대책회의에서 결정한 특별기구를 조직한 뒤, 이 기구를 통하여 공청회 때에 제출할 질의서를 작성하고, 군민의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를 열어 최종 질의서를 채택하기로 하였다. 12월 4일에 울진원전관련범군민대책위원회 구성을 위한 1차 주민대표 회의가 소집되어 공동대표로 군수[전광순], 군의회 의장[김선이], 반투위 위원장[임원식]이, 실무간사로 남효선이 선임되었다. 이어 실무진을 구성하고 환경 전문인을 초청하여 의견수렴, 지역 내 환경 생태 조사, 기본자료 수립 등 공청회 관련 작업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12월 17일에 군민들의 의견 수렴대회가 개최되고, 범대위가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12월 21일에 공청회가 개최되었으나, 공청회 공술신청인이 참석하지 않아 한국전력공사 측의 설명이 주로 이루어졌고, 울진원전관련범군민대책위원회에서는 초안 보완 요구사항에 대한 답변이 미흡하므로 공청회는 무효라는 입장을 밝히고 퇴장하였다. 그리고 환경부와 과학기술처 등에 환경영향평가에 군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요청하였다.

[경과]

1996년 5월 들어 원자력발전소 건설 후보지 문제가 다시 불거져 나왔다. 이미 3월에 울진군의회가 원자력발전소의 추가 건설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1982년 원자력발전소 부지로 지정된 산포리, 직산리 일대의 해제를 요구하는 건의안을 경상북도와 통상산업부장관에게 보냈다. 그런데 통상산업부에서 후보지에 대한 실사작업이 5월 중에 마무리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5월 6일에 긴급하게 울진원전관련범군민대책위원회가 소집되고, 산포리직산리의 원자력발전소 예정 부지의 지정 해제를 요구하는 건의문을 청와대와 국회, 통산부 등 11개 부서에 발송하기로 하고, 읍·면 시가지에 현수막을 걸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7월 25일 경상북도의회는 ‘원전건설 후보지 해제 촉구안’을 채택하였다.

또한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평해읍 직산리 일대를 대상으로 지난 1982년에 지정된 원자력발전소 건설 후보지를 즉각 해제하라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와 함께 울진원전관련범군민대책위원회는 1996년 여름부터 가두서명 등을 통해 원자력발전소 부지 지정 해제운동을 벌여 군민의 의사를 집결하는 방향으로 확대해 나갔다.

[결과]

울진 지역의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 반대운동은 지금까지 잠복되면서 계속되고 있다. 특히 원자력발전소에서의 방사능피폭사건으로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었다.

[의의와 평가]

울진 지역에서 일어난 반핵운동은 주민의 생존권, 생명권을 요구하는 일관된 운동이었다. 이런 점에서 울진 지역의 반핵운동은 한국현대사의 민중운동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정부 집권 세력의 일방적인 정책 수립과 재벌 위주의 경제성장 정책이 주로 이루어졌으며, 그 피해는 많은 경우 일반 민중이 받아왔다.

산업발전 논리에 희생된 농업과 농민층의 저항이나 여러 지역의 반핵운동도 이런 차원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반핵운동은 환경운동 차원에서 제기되었다. 울진 지역을 포함한 여러 지역의 반핵운동은 정치적인 논리가 아니라 인간적인 생명권, 생존권의 차원에서 다시 검토되고 접근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