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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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佛影寺佛輦 |
영어의미역 | Buryeongsa Temple's Palanquins for Buddhist Rituals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122[불영사길 48]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심현용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7년 1월 8일 - 울진 불영사 불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97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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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6월 23일 - 울진 불영사 불연 보물 제2127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울진 불영사 불연 보물 재지정 |
성격 | 가마 |
제작시기/일시 | 조선 중기|1670년 4월 |
제작지역 | 울진 |
재질 | 나무 |
소장처 | 불영사 |
소장처 주소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122[불영사길 48] |
소유자 | 불영사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불영사에 있는 조선 중기 시련의식에 사용된 가마.
[개설]
시련은 가마를 문 밖까지 메고 나가 신앙의 대상인 불·보살이나 재를 받을 대상인 영가 등을 가마에 모시고 여러 가지 위의를 갖추어 법회 장소까지 행렬을 지어 오는 불교 의식이다. 이때 불·보살을 의식 도량에 모셔와 돌려보내는 데 필요한 불연, 행렬에 필요한 나팔, 각종 번 및 기치류가 사용된다.
이러한 불교 의식에 사용된 의식구는 불교적 신앙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구상성을 지니는 불교 공예품이라 할 수 있다. 불연은 조선 후기에 들어금강송면서 다양한 불교 의식과 함께 그 제작이 보편화되었다.
[형태]
불영사 불연은 2채가 있다. 이 가마는 매년 부처님오신날 때 아기 부처를 모시고 경내를 도는 시련의식 때 사용하고 있다.
불영사 칠성각 불연의 크기는 높이 125㎝, 난간폭 86㎝, 총길이 311㎝이다. 형태는 전체적으로 난간을 두른 집 모양이며, 안에는 물건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앞과 뒤에서 4명이 밑에 붙은 가마채[손잡이]를 손으로 들거나 끈으로 매어 운반하게 되어 있다. 즉, 사람이 들 수 있도록 한 긴 손잡이 위에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한 사각형의 몸체를 올리고 그 위에 지붕을 덮은 모습이다.
불연은 받침대·몸체·지붕의 세 부분이 각각 분리될 수 있게 조립하였다. 받침대는 몸체를 올려놓기 위한 누각의 난간과 같은 형태로 만들었으며, 앞과 뒤에 2개씩 4개의 긴 손잡이를 만들어 맨 끝에 용머리를 조각하였다. 난간에는 연꽃, 사방 모서리에는 생동감 넘치는 용머리를 장식하였다. 받침대와 손잡이 부분에는 붉은 칠을 하였다.
몸체는 4개의 기둥에 창이 있는 벽체를 만들고 그 위에 지붕을 올려놓았다. 양측면 창에는 육각형의 그물망을 치고 그 중앙에 지름 14.9㎝ 되는 원형의 청동판을 달았으나, 현재는 한쪽만 남아 있다. 앞면과 뒷면 창은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았다. 벽체에는 화려하게 여러 가지 꽃무늬를 양각이나 음각하여 채색하였다.
지붕은 둥근 형태로 바깥은 녹색 비단으로 처리했으며, 상부에는 노란 색 복련 위에 붉은 색의 연봉을 세워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지붕의 네모서리에는 봉황의 머리를 끼울 수 있게 구멍을 뚫었으나, 지금은 3개의 봉황 장식품만 남아 있다. 내부에는 그물처럼 대나무를 엮어 지붕의 골격을 이루었다.
불연사 황화실 불연의 크기는 높이 125㎝, 난간폭 80㎝, 총길이 303㎝이다. 형태는 불영사 칠성각 불연과 거의 비슷하나, 손잡이 끝의 용머리는 앞쪽에만 장식되어 있다.
[특징]
불영사 칠성각 불연의 받침대 밑면에는 불영사조연기(佛影寺造輦記)와 시주질 및 연화질, 불연사 황화실 불연의 받침대 밑면에는 시주질(施主秩)과 사내질(寺內秩)이 묵서로 남아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불영사 칠성각 불연 : 불영사조연기〉
삼가 봉연(鳳輦)이라 하는 것은 법회를 열 때 수많은 부처들이 올라앉아 궁전으로 내림(來臨)하던 것이라. 그러나 어찌 한갓 그러한 것이기만 하랴. 항차 난봉(鸞鳳)이 꿈틀대며 난간 중에 날아오르고, 황룡(黃龍)이 용솟음치며 청련(靑蓮) 위로 솟아오르며, 십이진금(十二眞金)으로 벽을 장식하고, 칠보명주로 지붕을 얽고, 둥그런 명월과 같은 거울이 앞뒤로 걸려 있으며, 수놓은 작은 문을 열면 운영(雲影)이 누각에 내리고, 작은 보석으로 장식한 창을 열면 일월이 궁전을 비추는 것 같음이랴. 위대하고 장함이요, 찬연히 빛남이로다.
세상에 이 물건을 만든 자가 누구인가. 학종선덕(學宗禪德)이 바로 이것이로다. 무신년 가을에 소매 속에 옥축(玉軸)을 갈무리하고 길을 떠나 경상도 울산부에 이르렀다. 온갖 마을에 바람이 거세고 구름이 젖어들거늘 적선지가(積善之家)의 선연(善緣)을 맺게 하고, 홍공(鴻功)을 이루고자 했지만 좋은 장인을 만나지 못해 한세월을 그냥 보냈다. 기유년 봄에 홀연히 좋은 장인을 만났으니, 그때 마침 춘북령 원적산 대승암에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다. 공업을 결정하지 못하다가 경술년 봄에 결단을 내려 서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는 가히 사람의 소치가 아니라 하늘이 하는 바라. 옛날에 이르기를 대운(大運)이 도와 두루 미치지 못하면 정성만 거듭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가히 이를 두고 하는 말이러니, 이는 덕을 쌓고 능히 베푼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삼가 원컨대 불연을 조상한 후에 귀신이 용을 호위하여 하늘에서 지키고, 삼재(三灾)와 오해(五害)가 모두 끊어져 들어오지 못하며, 육시(六時)와 천락(天樂)이 무성하게 절로 내림하여 불일(佛日)이 거듭 빛나고, 선풍(禪風)이 다시 떨치게 하소서.(佛影寺造輦記 伏以鳳輦者 修說法席之時 恒沙諸佛昇坐來臨之宮殿也 豈徒然哉 而況鸞鳳辮飛於畵欄之中 黃龍玄湧於靑蓮之上 十二眞金爲壁 七宝明珠爲戶 金絲蛾蝶之結 而垂垂於四隅 團團明月之鏡 懸懸于前後 綉闥開 而雲影臨軒 瑱窓啓 而日月照宮 偉哉壯哉 赫赫乎也 世此物成之者阿誰耶 學宗禪德是也 戊申之秋 袖藏玉軸 而行至慶尙道蔚山府也 風飄雲衲於萬落千村 而募緣積善之家 欲成鴻功 而良工不遇 空負一歲也 己酉之春 忽遇良工 而向入宜春北嶺圓寂山大乘庵 始成矣 未斷功 而庚戌之春 以斷功 而結手也 可謂非人之所致 乃天之所爲也 古云天運循環無往 不復誠 可謂此也 此非積德能施者也 伏願造輦之後鬼神攸護龍天守 伏三灾五害絶歷 而入不六時 天樂繽紛 而自來重暉佛日 再振禪風云)
시주질, 경상도 양산 공양보시주 박수억 9월 양주, 울산 공양시주 김춘산 양주, 공양시주 이림.(施主秩 慶尙道梁山地 供養布施主朴守億 九月 兩主 蔚山地 供養施主金春山兩主 供養施主李林)
연화질, 광현 비구 성열 비구 덕진 비구 공양주, 능간 비구 기민보체, 화주 학종 비구, 인권대덕 혜능대사 비구. 기유년에 시작하여 경술년 4월에 완성함. 강희 9년 경술 4월에 공력을 마침.(緣化秩 廣玄比丘 性悅比丘 德眞比丘 供養主 能簡比丘 己敏保体 化主學宗比丘 引勸大德 惠能大師比丘 己酉年爲始庚戌年四月畢造 康熙九年庚戌四月畢功)
〈불연사 황화실 불연 : 받침대 밑면 묵서〉
시주질, 울산 공양대시주 한귀남 양주, 울산 정계상 양주, 울산 허해립 양주, 울진 남계목 양주, 울산 애령보체.(施主秩 蔚山供養大施主韓貴男兩主 蔚山鄭戒上兩主 蔚山許海立兩主 蔚珍南戒目兩主 蔚山愛令保体)
사내질, 지순, 태경, 도은, 해임, 법현, 경욱, 성주, 성진, 수승 탁륜, 삼보 사철, 화주 학종. 강희 9년 경술 4월 일 마침.(寺內秩 智淳 太敬 道訔 海稔 法玄 敬旭 性珠 性眞 首僧卓倫 三宝思哲 化主學宗 康熙九年庚戌四月日畢)
[의의와 평가]
한국 불교미술사에서 불연은 거의 연구가 되지 않은 분야로 아직까지 그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실정이다. 불영사 불연은 조각 수법이 매우 정교하고 화려하며, 제작 연대가 기록되어 있어 유물의 양식 편년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불영사 불연은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불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불교 공예사적으로 귀중한 자료이다. 또 바닥의 명문에 가마 조영의 사실과 공역에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의식구의 조영 동기, 조영에 참여한 승려들의 이름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불영사의 승려 계보와 역사를 규명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2007년 1월 8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97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6월 23일 보물 제212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