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B010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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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2리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2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여수경 |
남수산은 영양군의 일월산 지맥으로 이 지역에서는 가장 높고 웅장한 산이다. 마을에서는 주산으로 매화마을을 품에 안고 있는 형국이다. 마을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로 마을의 앞에는 매화천이 흐르며 매화들을 만들어내고 뒤쪽으로는 남수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마을은 남수산의 보호를 받으며, 매화들이 잘 자리 잡고 있다. 마을의 주산임 만큼 산에 대한 다양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먼저 격암 남사고(南師古) 선생이 이곳에서 학문을 연구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에는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현소(玄蘇)라는 일본의 고승(高僧)을 밀파(密派)하여 명산의 정기를 쇠진시킬 목적으로 남수산 정상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쇠말뚝이 최근 해군 레이더 기지를 구축할 때 작업 인부들이 쇠로 된 정을 제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남수산의 작은 봉우리 밑에는 수직으로 된 굴이 있는데, 그 굴에 돌을 던지면 떨어지는 소리가 한참 후에 들려 그 깊이와 너비를 지금도 가늠할 수 없는 신비한 굴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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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산
남수산은 조선시대 한발이 심할 때 매화면에서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울진군지』(1971)에 의하면 가뭄이 심하거나 수원이 고갈되어 농사가 어려울 때 길일을 택하여 기우제를 올렸는데 그 기우제에 대한 제단이 바로 남수산 정상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소화 14년(1939년)에 발행된 『울진군지』에 의하면 조선 명종 때 격암 남사고 선생이 ‘以山峀風景이 淸秀하므로 稱嵐稱’라 하고 ‘當早天祈雨則 有驗’이라 하였는데, 이는 ‘가뭄에 기우제를 올리면 효험이 있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비단 남수산은 매화마을을 감싸고 있는 마을의 진산으로서만이 아니라 울진에서 소축(小祝) 즉 소규모의 제를 올리는 제단으로서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몇 문헌에서 남수산이라 칭하지는 않지만 남수산으로 추정되는 명칭이 있고, 수리시설이 발달하기 전 1960년대까지 이곳에서는 매화면 단위의 기우제를 진행되었다. 매화면에서는 7~8월 가뭄이 지속되면 기우제를 계획하게 되는데, 그 장소는 남수산의 정상이었다. 당시 남수산에서 올렸던 기우제의 축문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남수산 기우제 축문 원문]
伏以惟我聖上 夙夜敬天 旱以爲憂軫
念宵旰詔喩 一邦遍禱名山 山亦化內
禱則有靈哀我群黎基頂 可忘雄比嵐嶽 鎭比海國作 威作德惟神是格凡厥
有禱?旅 渥氣數有關 旱魃肆虐月旣 經三雨尙 無一民憂封乾帝誠禱乙破斷
豕涉野皆 坼哀我 孑遺萬口神若惠之何 莫不應油然 然雨施 雲行母惜頂
臾慰滿三濃玆敢致 敬百拜新 誕應帝命母邈其聽
마을의 주산인 만큼 골골 마을 지명과 관련된 내용들은 모두 남수산과 관련된 것이다. 선산목은 남수산 발치에 위치한 작은 봉우리로 솟아난 봉우리 그늘에 앉아 보면 마을을 관망할 수 있는 좋은 위치이다. 마을을 바라보면서 신선들이 노는 곳이라고 하여 선산목이라 불린다. 이곳에 오르면 길목 중턱에 한 아름이 되는 돌배나무가 서 있는데 이로 배나무길이라 부르기도 하며, 이로 인해 시양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구신골 등과 물병골 및 남수산을 오르자면 반드시 마당목을 경유하게 되는데, 이곳은 경사가 완만하고 평지처럼 넓어서 명명되었다. 이 계곡에는 산딸기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오월 단오절이 되면 큰 그릇을 들고 이곳에 딸기를 따기 위해 무리를 지어 등산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