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B01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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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2리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2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여수경 |
1950년대 매화마을에서는 청년들이 군입대를 할 때 마을 동민들이 모두 모여 군대를 가는 청년들을 환송해 주었는데, 이시기 군대에 입대할 경우 전사자가 많이 생겨 돌아올 수 없는 청년들이 종종 발생하였다. 이를 위해 입대 시에는 집안이 아닌 마을 차원에서 청년들을 환송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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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리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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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리청년회
당시 매화마을에는 정기적으로 군입대를 하는 청년들이 있었으며,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았으며, 30대가 주축을 이루는 젊은 마을이었다. 지금은 인구의 고령화와 함께 상대적으로 수명이 긴 여자들이 더 많은 수를 이루고 있지만 1950~70년대 초반까지 마을의 중심은 청년들이 이끌어가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 청년회가 있었다.
매화청년회는 인근의 다른 마을보다 결속력과 조직력이 뛰어난 동네로 이름이 나 있었다. 이를 뒷받침하든 마을간 축구대항에서 우승을 놓쳐본 적이 없는 매화청년회는 그 실력이 높아 당시 강원도 대표 선수자격을 갖춘 사람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특별한 기구도 시설도 없던 당시 짚과 새끼줄을 꼬아 축구공을 만들고 이를 대신 차면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여가를 즐겼다. 마을운동장은 마을 매화천 부지를 이용하였는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넓은 공터에 자갈과 돌멩이를 치운 뒤 자연스럽게 운동장을 만들었다. 축구에 대한 열기가 높아 「축구장으로」라는 노래도 지어 불렀다.
「축구장으로」
너머로 매화 강산은 우리의 태도
나가자 뛰어가자 축구장으로
용감한 앞내 물결 우리의 태도
우리들은 매화2리 축구 단체다.
왠지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축구장으로」 노래는 당시 축구에 대한 청년들의 열기와 관심을 여실히 보여준다. 청년회의 활동은 비단 축구를 통한 자신들의 여가활동으로 그치지 않았다. 매화리 청년회를 중심으로 마을에서는 연극 단체를 만들게 되는데, 1959년에는 매화2리 체육단 예술제를 개최하여 주변 마을과 함께 매화주민들을 모아 「비밀의 책자」를 연극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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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리청년
마을 청년회의 체육에 대한 관심은 1960년 매화리 남수 체육회를 조직하고 본격적으로 체육활동을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매화천의 고수부지 잔디밭에서 매화리를 중심으로 결성된 남수체육회는 인근 마을 금매2리와 친목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청년회는 이외 마을에서 궂은 일을 모두 담당하는 마을의 일꾼들이었다. 기와집으로 된 구 건물의 마을회관은 청년들이 힘을 모으고 국비를 받아 1977년 철골구조 시멘트 2층으로 짓고 1층은 노인회관과 2층은 마을 회의장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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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
이외에도 제방을 쌓고 마을의 농지 정리를 하는 등 마을에서 힘이 필요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청년회가 앞장섰다. 하지만 70년대 이후 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젊은 층의 도시로 유출되자 마을에서는 더 이상 매화2리 청년회가 유지되지 않았으며 결국은 원남면[현 매화면] 단위의 청년회로 확대 결성되면서 매화2리 청년회는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