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C01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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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소광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여수경 |
상여계는 혼자 메기 어려운 상여를 함께 메고 힘든 시기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 함께 이를 힘을 나눠주기 위함에서 조성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죽음에 임박했을 때 이를 감당해야 할 가족들은 찾아오는 문상객과 각종 절차 등을 챙길 정신적 또는 육체적으로 힘들다. 이때를 대비해서 사람들은 마을내 상포계를 운영하며, 누군가의 집에 상이 났을 때 이에 노동력 또는 음식을 부조를 행하고 다시 이를 받은 사람은 그 사람의 집에 상이 났을 때 부조를 행하는 호혜성을 원칙으로 상여계를 운영하였다. 과거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상여계를 운영하며, 상여집(또는 고새집)을 마을 한 편에 두어 평소에는 꺼려지는 상여도구 등을 이곳에 넣어 놓고 함께 사용하였다. 소광리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아직도 상포계는 이곳에서 다른 어떤 친목계와 사회조직보다도 강력한 힘을 가지면서 지속되고 있는 모임 중 하나이다.
소광1리와 소광2리 모두 상여집을 불태우면서 상여도 함께 불태웠다. 과거 목재로 만든 상여는 장정 18~20명이 함께 들어야 할 정도로 무거운 것이었다. 청년회가 없는 지금 이를 짊어지고 갈 사람이 없기 때문에 쓸모없이 방치가 되었다. 현대식으로 가벼운 꽃상여로 바꾸자는 몇 번에 걸친 주민들의 이야기에 의해 상포계장과 마을 연장자들은 회의를 거쳐 결정을 짓게 된다. 좋은 날을 택하여 상포계장과 노인회장을 비롯한 마을의 연장자들 총 4명은 4홉짜리 유리병에 술을 담고, 사과 하나, 배 하나, 건오징어 하나를 구입하고 상여집을 문을 활짝 열었다. 이후 상여와 옷 등을 모두 꺼낸 뒤 상포계장이 잔을 한잔 붓고는 ‘소각합니다’라고 말한 뒤 상여와 옷 등을 밭에서 함께 태운다.
상여와 옷 등을 태웠지만 상포계의 운영은 그대로 유지된다. 병원이 먼 이곳에서는 자녀들이 외지에 있는 경우 장례식을 외부 병원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종종 마을에서 장례를 치르기도 하며, 장지를 이곳을 택하는 경우 장지까지 옮길 노동력으로 상포계에서 도와주기 때문이다. 상포계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 거주지가 소광리로 되어 있는 사람으로 마을에서 거주하는 자이어야 한다. 가끔 외부인을 받아주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도 주민등록 거주지가 이곳이 아니더라도 마을에서 상주하며 살아야 하고, 주민들과 함께 행동하는 것을 전제로 가입시켜 준다. 가입비는 따로 없다. 과거에는 초상이 나면 조가 나눠져 있어 쌀 한 되, 막걸리 등을 조별로 가지고 왔지만 오늘날에는 함께 준비한다. 1년 중 12월 15일(음력)에 모임을 갖고 일년동안 난 초상에 대해서 결산을 실시하고 이날 함께 모여서 논다.
상포계는 운영비는 가구당 한 명의 호주가 가입할 때 내는 비용으로 행하며, 호주가 죽는 경우 그의 장남이나 차남이 승계한다. 만약 몸 부조를 하지 못할 경우에는 음식 또는 벌금을 대신해야 하는데, 이 또한 멀리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허락되지 않는다. 대부분 가입된 자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상이 났을 때 노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소광1리에서는 아직도 상포계 문서를 상포계장을 지냈던 분이 가지고 있으며, 이곳에는 과거 상여를 빌린 이들의 금액과 상여계에 모아 둔 돈이 잘 정리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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