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C03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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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여수경 |
1980년을 넘어 화전민촌은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공비사건이 일어나고 화전민촌을 건설할 때만 하여도 이곳은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이후 곧 사람들은 이곳에 화전민촌이 있었는지를 까마득하게 잊었으며, 당국에서도 더 이상의 투자를 하지 않았다. 생활은 점점 불편해져 갔다. 식구들은 늘어나지만 한 집에 두 가구가 함께 생활하는 것은 어려웠으며, 교통은 여전히 불편하여 세상과 계속적으로 단절되었다.
화전을 일구며 생활했을 때와는 다르게 이미 세상 속으로 나온 이들에게 다시 화전민으로 돌아가는 것을 불가능하였다. 세상의 중간 다리에 서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완전히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공동작업장에서 능률도 떨어지고 농사짓기도 불편하며, 교통은 더욱더 불편하여 아이들의 교육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둘씩 세상으로 나갔다. 최순호도 그렇게 세상 밖으로 일찍이 나갔으며,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
일찍이 중학교를 삼근리 면소재지에서 생활한 후 고등학교는 포항에서 다녔다. 당시 할아버지와 함께 소광리에서 생활하시던 아버지는 자식들의 교육을 생각하여 포항으로 이사를 왔고 그때 함께 이곳으로 이주하여 고등학교부터는 포항에서 생활하였다. 8남매 장남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부모님은 장남인 그에 대한 공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군대를 들어갔고, 제대한 뒤 포항제철에서 근무하였다. 그렇게 포항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였지만, 고향이 늘 그리웠다. 27살 젊은 나이에 그는 홀연히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화전민촌에 들어와 토봉을 시작하였다. 장가도 가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토봉을 시작한 최순호를 가족들은 안쓰럽게 생각하였고, 이에 대한 미안함에 다시 수원으로 가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수원에 적응하지 못한 그는 다시 대구로 내려오고, 90년 겨울에 다시 고향 울진으로 돌아왔다.
과거에는 너무 오지라서 세상이 너무 궁금하였지만, 그래서 늘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이제는 여기가 편하다. 가끔 울진으로 나가서 필요한 물품을 사기도 하고, 대구로 나가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곳에 가면 먼저 몸이 싫어함을 느낀다. 금강송이 주는 공기와 조용한 산에서 생활하다 보니 세상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힘들고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그래도 불편한 것이 있다면 병원이 없어 몸이라도 아플 때가 되면 바깥으로 나가야 된다는 것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다른 것은 없다. 모두 자급자족이 되고, 필요하면 자동차를 타고 사서 오면 되는데,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이곳의 생활은 아무래도 약간의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밖에서 생활도 하고 큰 공장에서도 다녔지만 그는 자신이 머물 곳은 이것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