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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의 바람은 죽변등대에서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D010105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4리 산1번지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이명동

죽변의 지리적 위치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이로 인해 신라시대에는 왜적을 막기 위해서 이곳에 죽변성을 쌓고 수군을 상주시켰다.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인들은 죽변곶에 망루와 등대를 설치하여 러시아군의 동해안 진출을 감시하였다. 죽변곶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 등대는 일본인이 러시안군의 침략을 감시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처음 건립되었다.

그러나 등대의 건립 이후 죽변항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1910년 11월 점등을 개시한 죽변등대죽변곶 또는 용의 꼬리라 하여 용추곶(마을 사람들은 용태미라 지칭하기도 한다)으로도 불리는 끝단에 세워졌다.

내부에는 1911년 일본국 수로부 수로측량 원표가 보존되어 있다.

1907년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일본인이 세웠다고 하는 등대는 콘크리트로 만든 4층 구조의 8각형 몸통(높이 16m)으로서 민흘림기둥에 주두를 얹은 출입문 위로 박공장식을 부가하였다. 창문은 위치를 각층마다 다르게 하여 통풍이 잘되게 하였으며 비를 막을 수 있도록 하였다.

처음 석유등으로 불을 밝히다가 1959년 4월 비상발전기를 설치하여 전등으로 바뀌었다. 20초마다 돌면서 35㎞ 거리까지의 빛을 내보내고 있다. 한국전쟁 전쟁 당시에는 폭격으로 등대의 윗부분에 구멍이 났었는데,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죽변 앞바다에서 함포사격을 하여 죽변등대의 윗부분에 세숫대야만한 구멍이 뚫렸었다’라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 작은 총알자국이 죽변등대 주변으로 수없이 많은 자국들을 남기며 있었다. 현재는 등대가 보수공사를 하여 그 자국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없어졌다.

일본인들이 일찍이 죽변이 좋은 항구로서의 자리가 될 수 있음 확인하고 망루를 설치한 뒤 등대를 세웠다. 등대는 망망대해에서 안내자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등대가 있는 곳은 그만큼 많은 어선들이 이곳을 왕래함을 의미한다. 1910년 당시 이곳에 등대가 들어섰음은 이미 죽변 일대가 일전의 조그만 연안어촌이 아닌 어업기지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했음을 대변해 준다. 1910년 등대의 설립과 더불어 많은 일본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하고 주변으로 방파제가 축조되고, 정기여객선 또는 중간 경유지로서 여객선이 정박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는 등 죽변항은 변화의 바람이 겪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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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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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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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등대

2005년 9월에는 죽변등대의 역사성과 그 미적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경상북도 지정 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소장 1명과 직원 2명 등 포항지방해양수산청 항로표지과 소속 지원 3명이 근무 중이다. 이곳의 등대원은 죽변등대를 포함하여 죽변항의 동익제방파제 등대, 서익제방파제 등대와 진미말등대, 오산항 북방파제 등대, 사동항 남방파제 등대, 북방파제 등대, 화모말등대까지 9개의 등대를 관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죽변등대를 제외하면 모두 무인등대이며 정기적으로 순회하면서 관리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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