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D02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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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4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명동 |
1950년대부터 뛰어난 나잠기술로 이미 동해안의 미역 채취에 대부분은 잠녀들이 독점한다. 정어리, 오징어, 꽁치와 더불어 동해안에서 주요 어획물인 미역은 각 마을에서 중요한 생산물로써 관리되고 있었다. 동해안을 따라 나잠업은 주로 미역과 우뭇가사리, 전복, 멍게 등을 채취를 주 목적으로 하며, 여기서 주요 생산물은 미역이다.
잠녀들이 작업하기 전 죽변에서 미역채취는 낫대(끝에 낫을 단 긴 장대)를 이용한 것으로 수심 2m가 넘지 않는 곳을 위주로 작업이 이루어졌다. 낫대를 이용한 작업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지만 노동력에 비해서 미역 채취량이 적고, 양질의 미역을 딸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현재도 낫대를 이용한 작업으로 미역을 채취하는데 이는 주로 작업 중 연안으로 흘러 들어온 미역을 줍거나 또는 연안에서 자란 미역을 딸 때 사용한다. 죽변에서 미역은 수심 5~10m의 선에서 주로 자라는데, 낫대를 이용할 경우 정작 집단적으로 자라는 미역밭에서는 미역을 채취할 수 없게 된다.
반면 잠녀들의 기술은 특별한 도구도 없이 긴 숨을 쉬고 수심 15m까지 내려가 양질의 미역과 우묵가사리, 성게 등을 채취하였다. 그리고 조류가 세고 수심이 깊은 제주도에 비해 조류가 세지 않고 수심이 깊지 않은 동해안은 항상 같은 시간에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수심이 앝고 물이 맑아서 사고위험도 적다는 강점이 있었다. 죽변에서의 나잠업은 비가 와도 지속할 수 있었고, 다만 9~10월 불어오는 ‘강원도 불바람’만을 조심한다. 제주도에서 비해서 작업환경이 좋은 죽변에서 그들의 생산활동은 더욱더 왕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미역 채취에 경쟁관계에 있었던 뎃마선에서 수경을 이용한 채취 방법과 잠수기 사용에 비해 나잠법은 여러 점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또한 나잠을 이용한 미역은 그 뿌리까지 캐기 때문에 곱게 건조시킬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며, 뎃마를 이용한 미역 채취는 상당량 바다로 흘러가 손실이 많다는 단점이 있었다. 1970년대 뎃마와 잠녀 모두 어촌계원의 자격으로 미역을 채취하였으나 뎃마의 채취능력은 잠녀의 1/10에 불가하였다고 전해진다.
기술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에서 우위를 차지한 나잠법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어로도구 변화에 따라 보다 안정적으로 변화하였다. 1930년대에서 50년까지 무명옷과 나일론으로 만든 잠수복(죽변의 해녀들은 이것을 물소중이라 부른다)을 이용하였는데, 이는 추운 겨울바다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단점을 가진다. 수심이 얕고 물이 맑아 위험부담이 적은 반면 9월 이후에는 그들의 어로도구 한계로 인해 작업을 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1960년대에는 고무옷과 수경 그리고 태왁(물에 뜨기 위해 지탱하는 도구로서 제주도에서는 테왁이라 하는 반면 울진에서 이들은 두룽박이라 한다)과 망시리(채취한 해산물을 담는 망)를 사용한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에는 고무옷과 모자, 장갑, 수경 그리고 두룽박과 납을 이용한다. 물소중이가 스펀지 잠수복으로 바뀌면서 작업 기간은 좀 더 길어진다. 9월 찬물에도 가능할 수 있게 잠수복은 개량이 되었고, 스티로품으로 만든 두룽박은 좀 더 안전하게 그들의 자맥질을 도와주었다. 스티로품으로 만든 두룽박은 나잠업을 하는 그들에게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다. 바다속을 드나들면서 자맥질을 하는 과정에서 이는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끈으로 1920년대에 이를 도롱박으로 만들어 억새로 그 끈을 묶어 연결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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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채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