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D020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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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4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명동 |
1957년 아바이들은 월우회를 조직하였다. 홍원군 16명, 북청군 8명 총 24명의 회원으로 출발하였다. 그들이 모임을 조직한 것은 죽변에서 자리 잡기 위한 첫 발걸음이었다. 1951년 남으로 내려와 죽변에 터를 잡았을 당시에도 돌아갈 것을 기정사실로 했기 때문에 모임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언제나 돌아갈 사람들로 생각하여 어떤 새로운 것을 사지도 구입하지도 않은 그들에게 모임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7~8년의 시간이 흘러 돌아갈 희망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고, 죽변에 정착해서 살기 위해서는 상호간 정보 및 여러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에서 1957년 드디어 월우친목회가 조직된 것이다.
애초 가장 큰 목적은 땅이 없는 그들에게 사람이 죽어도 매장할 곳이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상포계의 성격이 더 컸다. 고향으로 돌아갈 그들에게 땅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구입하지 않았고, 또 죽변의 선주민들 괄시로 묘를 쓸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다. 상이 났을 때 주변의 많은 도움이 필요한데도 아는 사람이 없어 혼자 상을 다 치러야 하는 등 외지인으로써 겪어야 하는 설움이 많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일념으로 24명의 죽변에서만 거주하는 함경도 아바이들이 모임을 시작한 것이다.
1960년 들어서면서 회원은 50여명으로 늘어나고 1979년에는 43명, 1983년에는 66명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1990년이 되면서 1세대 아바이들이 명을 다하고 그 자식들은 외지로 나가면서 1996년에는 회원의 수는 49명으로 줄어들었다. 친목회 가입은 입회금 600환을 내는 깃으로 연 4회의 임시총회를 개회하도록 하며 그때 회비를 200환씨 내도록 하였다. 그리고 혼례와 상례의 경우 각각 2000환과 3000환을 증여하고 몇 회원들은 돌아가며 몸부조를 하도록 규정하였다. 임원은 회장위에 존위 1명과 부존위 2명, 총무 1명, 간사 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의와 회원 상례에는 불참에 따른 벌금이 발생하는데 이를 결전이라고 한다.
친목회에서는 다양한 문제를 논의하는데, 관혼상제의 부조금에서 묘지 구입건, 상가 도방, 당계 문제, 그리고 노동력 동원에 대한 문제를 가장 크게 다루고 있다. 친목회 결성목적에서 밝힌바와 같이 묘지 구입건은 회의마다 주요 안건이 되었는데,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1960년과 1970년대를 걸쳐 공동으로 쓰는 산을 구입하였다. 그리고 상여도 직접 만들었지만 지금은 산사태로 유실되고 없다.
1980년대 이후 아바이 1세대들이 사망하자 그의 2세대들이 친목회를 이어가는데, 대부분이 장남 승계를 원칙으로 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고향을 그리는 1세대들의 마음을 담아서 죽변면 후정리 산44번지에 월남민의 공동묘지를 조성하고 망향비를 세웠다.
그리고 이 주변을 망향동산인 향원을 조성하고 관리하였는데, 이를 위해서 1983년 회칙을 개정하였다. 그 내용은 주요 골자는 죽변에서 연고 없이 죽은 사람들의 묘를 친목회에서 관리한다는 것으로, 그 결과 연고 없는 사람들을 위해 친목회에서 돈을 내어서 작은 묘비를 만들어 세웠다. 삼년을 주기로 망향제를 지내며, 자식없이 이곳으로 온 같은 피난민들의 넋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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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우회의 망향비
연고가 없는 타지에서 유발된 생활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월우회는 죽변에 거주하는 함경도 아바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타지에서 생활하는 함경도 아바이들까지도 많은 정보와 함께 도움을 줄 수 있었고, 자체적으로 그들이 죽변에서 터를 잡고 살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오늘날 2세대들이 죽변뿐만 아니라 외지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월우회 등의 조직으로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세상살이가 바빠 연 4회의 총회를 2회로 줄이고 망향제도 3년에 한번씩 음력 10월에 올리지만, 아바이 1세대들의 뜻을 받아 1991년에는 2세대들이 월우청년회를 조직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