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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사로 돈을 벌고 함경도에서는 명태를 잡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D030202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4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명동

북한에서 처음부터 배를 타지는 않았다. 어려서는 만주사변이 일어나서 시장에 가서 천장사를 하였다. 북한에서도 배운 것이 없고, 가진 것도 많이 없었고 일본인들에 의해 마땅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시기 만주를 오가며 천장사를 행하였다. 그렇게 그럭저럭 장사가 되는 듯 했는데 전쟁이 나면서 중단되었다. 열일곱에 만주를 오고가며 천장사를 소매와 도매를 했던 심정섭은 북한에서도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었다. 전쟁이 터지면서 가게가 잘 되지 않자, 함경도에 유명한 명태덕장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배는 타지 않고 명태가 들어오면 그것을 할복하는 일을 감독하였다. 양력으로 10월 15일이 되면 그의 고향에서는 엄청난 양의 명태가 들어온다. 그리고 이를 할복하여 말리는 덕장의 일은 해도 해도 쌓이는 데 이를 관리하는 일을 그가 다시 시작한 것이다. 고향에서 그는 잘사는 사람이었다.

형님 소유의 명태덕장에서 할복을 관리하는 감독관으로 그는 고향에서 명태잡이 수산업을 하였다. 당시 함경도의 명태는 함경도 앞바다로 와서 연해주로 빠진다. 수온에 따라서 내려가기를 왕복하는데, 큰배와 작은배가 한 조가 되어서 명태잡이를 행한다. 큰 배가 그물을 치고 작은 배는 그물을 들고 들어가는데, 이렇게 큰 그물을 수조망이라고 하고 작은 배가 그물을 치는 것을 꼬장이라고 한다. 심정섭의 고향 홍원군은 명태잡이에 필요한 수조망이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 ‘함흥내기(서북풍)’이 부는 겨울이 도면 항구에 온통 사람들로 가득차고 명태잡이에서 명태를 따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인산인해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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