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E01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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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 |
집필자 | 신상구 |
두천1리는 바깥말래라 불리며, 북면에서 봉화로 넘어가는 마지막에 위치한 마을이다. 골마와 주막거리, 숲거리 세 마을로 형성되어 있으며, 골마와 주막거리는 마을 앞 들의 첫 번째 다리를 경계로 숲거리와 구분된다. 두천1리에 들어서면 마을을 지키고 있는 ‘악구산’이 있으며, 마을을 지나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배나무목재(이목고개)에 다다르는데, 이곳은 두천2리와 두천1리의 경계선이 된다. 두 마을을 감싸든 두천(斗川)이 골마 앞 동네를 감싸고 흘러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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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천리 마을전경
바깥말래에 대한 지명유래는 두천리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두천원과 연관된다. 1800년경 마을이 생기면서 이곳은 한양에서 울진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한번은 꼭 들러야 하는 곳이었다. 옛날 고을 원이 부임할 때도 이곳을 반드시 들러야 했는데, 어느 날 원이 마을 타고 지나가다가 날이 저물어 두천2리 안말래 장평에 숙박하게 되었다. 자고 나니 타고 온 말이 간 곳 없어 하루종일 말을 찾다 바깥말래 다래 넝쿨 밑에서 찾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마래(馬來)라 하다가 말래가 되었다. 두천도 마래(馬來)의 말 두(斗)자와 내 천(川)자를 따서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마을이 가장 번성했을 시에는 47여호가 거주하였지만 2008년 현재는 34가구 만이 거주한다. ‘1말이 되면 넘쳐 흐르기 때문에 재물도 어느 대에 가면 한계에 다다른다’는 속설에서 비롯된 두천(斗川) 지명은 김녕김씨와 청송심씨가 대성을 이루며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에 따라서 김녕김씨 낙향조인 김균세가 처음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기도 하며, 청송심씨가 먼저 개척하였다는 설이 공존하지만 정확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문헌 및 기록 등이 발견된 바는 없다. 다만 십이령 고개길에 들어서는 입구 언덕에 청송심씨 심천범(沈天範)의 효자각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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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령고개길 전경
심천범과 그의 부인 강릉최씨가 100세 되신 아버님을 지극히 모시자 울진 유림에서 철종 5년(1854)에 왕에게 상신하여 왕이 포 100필을 하사하고 효자로 정려하였다는 내용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