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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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1리에서는 3월 3일 친목계 일종의 마을 모임을 가지는데 이를 ‘계갈이 한다’라고 한다. 동제가 중단된 양 마을에서는 음력 정월대보름이 되면 마을에서 행하는 특별한 행사는 없으며, 면단위의 윷놀이 또는 쥐불놀이, 달집태우기가 있어 여기에 참석한다. 이외 마을별 친목을 다지기 위한 시기가 바로 음력 3월 3일이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3월은 본격적인 농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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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리에서 태풍은 ‘계락’이라 부른다. 밖에서 ‘매미’, ‘사라’ 등 이름으로 태풍을 분류한다면 이곳에서는 태풍이 온 그 해 이름을 따서 ‘병자년 계락’이라 칭한다. 마을 사람들의 기억에 가장 무서운 계락은 ‘병자년 계락’ 즉 1958년 한국을 강타하고 엄청난 피해를 안겨다 준 사라호이다. 사라호는 비단 이곳에서만 피해를 입힌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 산사태로 사람들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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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지역에 분포하는 산등성이와 봉우리 사이가 낮은 지형. 울진군의 지형은 태백산맥과 태백산맥 동록의 해안저지로 대별될 수 있다. 또한, 태백산맥은 지형적 특성에 의해 다시 중앙산맥과 해안산맥으로 구분된다. 이중 중앙산맥은 온정리-매화천-울진을 연결하는 구조선 서쪽에, 해안산맥은 그 동쪽의 산열을 의미한다. 한편, 해안저지는 태백산맥이 동편에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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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작성된 소광리 마을지도는 이곳의 마을은 한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는 표현보다는 말 그대로 뜨문뜨문 떨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소광1리에서 벗어나 소광2리 마을들은 산속 숨은 그림찾기하듯 집들이 숨어있으며, 그리고 각 집들은 각자가 부르는 골짜기 안에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그곳에 마을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사람들이 송이채취와 벌꿀, 그리고 산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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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서 발원하여 금강송면, 울진읍, 근남면을 지나 왕피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큰빛내마을과 작은빛내마을을 흐른다고 광천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1,119.1m 산지 부근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다가 금강송면 삼근리 광천교 부근에서 진조산[908.4m]과 통고산[1,066.5m] 부근에서 발원한 지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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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와 삼근리 사이에 있는 다리. 길이는 45m이며, 총 폭은 10m에 실제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유효 폭은 8.5m이다. 차선은 편도 1차선, 왕복 2차선이며, 지상으로부터 다리의 높이는 7m이다. 1985년도에 준공되었으며, 상부는 RCT 공법에 하부 Ra로 만들어졌다. 설계하중은 DB18까지 견딜 수 있다. 국도 36호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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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서식하는 식물 군락. 경상북도의 식생 분포는 온대 혼합림에 속한다. 온대림 지대는 온대 남부·온대 중부·온대 북부 식생대로 세분되는데, 울진군은 온대 남부 식생대에 해당한다. 그러나 울진군은 위도상 온대 남부 식생대의 북쪽에 해당하여 남부 지역에서 널리 볼 수 있는 낙엽 활엽수림은 국지적으로 나타나고 대부분 침엽수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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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에 속하는 행정구역. 울진 읍내에서 서쪽에 입지하여 지명을 서면이라 하였다가, 지역내에 있는 금강송 군락지에서 유래된 금강송면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본래 울진군의 지역으로서, 하원(下院)·삼근(三斤)·왕피(王避)·봉전(鳳田)·달전(達田)·소조원(召造院)·후곡(後谷)·광천(光川)·전천(前川)·원곡(元谷)·승부(承富)·광비(廣比)·거응(巨應)·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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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에 있는 고개. 고개마루가 넓어서 넓재라고 한다. 또 일부에서는 큰 늪과 재가 있다고 하여 큰넓재라고 부른다. 십이령 상에 있는 고개로서 선질꾼이나 나그네가 쉬어 가기 좋은 넓은 재라 하여 넙재라 한다. 넓재는 태백산 준령에 둘러싸인 산간오지이며 산꼭대기에 위치한다. 동쪽에는 진조산[908.4m]이 있으며, 서쪽은 광회1리,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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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을 넘어 화전민촌은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공비사건이 일어나고 화전민촌을 건설할 때만 하여도 이곳은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이후 곧 사람들은 이곳에 화전민촌이 있었는지를 까마득하게 잊었으며, 당국에서도 더 이상의 투자를 하지 않았다. 생활은 점점 불편해져 갔다. 식구들은 늘어나지만 한 집에 두 가구가 함께 생활하는 것은 어려웠으며, 교통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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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소광리를 흘러 광천으로 유입하는 하천. 대광천이라는 지명은 큰빛내마을 앞을 흐르는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광천은 백병산[1,153m]에서 발원하여 소광리까지, 광천으로 합류되기 전까지의 하천이다. 큰빛내마을은 소광리 장군터에서 북쪽 2㎞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안봉산과 마을 앞에 흐르고 있는 큰 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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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2리에서 가장 넓은 평지는 과거 삼근초등학교 소광분교가 위치하던 곳이다. 지금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숙박시설로 바꾼 곳이지만 1995년까지 이곳은 소광리 일대 사람들이 다니던 학교였다. 1947년 소광초등학교가 설립되기 전 마을 사람들은 걸어서 12㎞ 떨어진 삼근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어른 학생들이 다니기에 이 길은 너무나도 멀었으며, 산악에 위치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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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리에는 다양한 조직들이 활동 중이다. 각 마을에서는 산림계와 친목계, 상여계, 노인회, 부인회 등이 활동 중이지만, 다른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청년회는 없다. 과거 이곳에서도 각 마을별 청년회가 조직되어 활동하였지만 1990년대 이후 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함께 노령인구의 증가로 인해 마을별 청년회는 해체되었다. 현재는 면단위로 형성되어 있는데 서면청년회가 조직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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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이 금지된 오늘날 소광리에서 사냥을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이다. 그는 사냥면허를 가지고 있어 전국적으로 돌아다니면서 사냥을 행할 수 있지만 지역적으로는 소광리에서, 그 시기는 11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 가능하다. 사냥면허는 지역별로 4년에 한번씩 허가를 내주는 데, 멧돼지가 많은 경우 필요할 때마다 사냥 허가를 내주기도 한다. 과거에는 도 단위로 사냥허가를 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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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에 속한 각 면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 면사무소는 시(市)나 군(郡)에 속한 지방 행정 구역 단위의 하나이자 보통 몇 개의 리(里)로 구성된 면(面)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일선 공공 행정 기관이다. 2015년 현재 경상북도 울진군에는 북면, 죽변면, 금강송면, 근남면, 매화면, 온정면, 기성면, 후포면 등 8개의 면이 속해 있으며 각 면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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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상태에서 일 년 동안 모은 꿀은 말 그대로 보약으로 통한다. 소광리 사람들은 긴 겨울 추운 겨울날씨를 이겨내기 위한 방안으로 ‘백병탕’을 먹는데, 이는 백가지 병을 고친다는 만병통치의 의미가 숨어 있다. 백병탕은 토봉에서 갓 딴 꿀을 두어 숟가락 냄비에 담고 이를 팔팔 끓인다. 양봉으로 한 꿀은 이렇게 끓이면 바닥에 눌러 붙지만 토봉은 그렇지 않다. 꿀이 팔팔 끓게 되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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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은 비교적 오래전부터 행해지던 농법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한 것으로 일제강점기로 추정된다. 당시 토지를 가지지 못한 농민들이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지만 소작료와 기타 수수료를 제외하면 보리고개도 넘기기 힘든 악순환이 되풀이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전은 지주의 간섭과 높은 소작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고, 토지를 갖고자 하는 농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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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리의 겨울은 길고 오랫동안 지속된다. 11월 모든 농사일이 끝나고 토봉마저도 따고 12월 본격적인 겨울이 되면 마을 사람들 중 청장년들은 눈 덮인 산으로 사냥을 떠난다. 현재는 수렵이 금지되어 면허가 있는 경우에만 사냥이 가능하나 50년대에는 누구나 사냥을 할 수 있었고, 겨우내 마을의 청장년들 놀이로서 사냥이 행해지기도 하였다. 사냥을 나갈 때에는 마을에서 용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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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계는 혼자 메기 어려운 상여를 함께 메고 힘든 시기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 함께 이를 힘을 나눠주기 위함에서 조성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죽음에 임박했을 때 이를 감당해야 할 가족들은 찾아오는 문상객과 각종 절차 등을 챙길 정신적 또는 육체적으로 힘들다. 이때를 대비해서 사람들은 마을내 상포계를 운영하며, 누군가의 집에 상이 났을 때 이에 노동력 또는 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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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 있는 수령이 150~520년 정도로 추정되는 거대한 금강소나무 수만그루가 자라고 있는 군락지. 금강소나무는 줄기가 곧고 목질이 단단하여 조선시대 궁궐용 목재나 왕실의 목관을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 황장목이 금강송이다. 황장이란 소나무의 붉고 누런 속 부분인 심재부를 가리킨다. 금강소나무의 심재부는 일반 소나무에 비해 월등히 넓은데다 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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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질꾼이 지난 자리는 도부꾼이 이어 받는다. 도부꾼은 주로 여자들이 하는데, 한국전쟁이 발발 후 미망인들이 많이 생겨나고 생계를 위해 그들은 울진의 생산물을 가지고 직접 십이령을 넘어 각종 곡식으로 바꿔 시장에 내다 팔았다. 한국전쟁이 발발 후 남성들로 이루어진 선질꾼의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 자리는 대신 전쟁에서 살아남은 하지만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도부꾼들이 자리 잡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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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소조동(召造洞)과 광천동(光川洞)에서 ‘소(召)’자와 ‘광(光)’자를 따 ‘소광(召光)’이 되었다. 본래 울진군 금강송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후곡동(後谷洞)·소조동·광천동이 통합되어 소광리로 개편되었다. 소광리의 남쪽은 세덕산(細德山)[740.8m], 남서쪽은 진조산(眞鳥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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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리에 버스는 아침 9시에 한번, 오후 5시에 한 번 하루 두 번 왕래한다. 버스로 울진읍을 왕래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자가용 또는 외지로 나가는 사람의 차를 얻어 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버스도 소광리에 처음 들어오게 된 배경은 남다르다. 자동차가 귀한 시절 소광리 사람들에게 버스는 무엇보다도 필요한 교통수단이었다. 하루를 꼬박 걸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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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의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대광천과 만나는 지점 사이에 있는 하천. 일명 자근빛내라고도 한다. 소광천의 지류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백병계곡과 십이령이 만나는 지점까지의 소광리 마을을 흐르는 하천은 군 내에서 가장 높은 계곡을 흐르는 하천이다. 큰빛내[大光川]와 산맥 등선을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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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이전까지 송이는 보통의 산나물과 마찬가지로 계절에 따른 식용 가능한 버섯의 일종이었다. 그러나 이후 일본으로 수출이 급증하면서 송이의 가치는 달라지기 시작하였는데, 이로 인한 수요급증은 송이 가격을 상승시켰고 산촌 경제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송이 수요의 급증은 송이산의 가치를 급증시켰는데, 마을의 경우 공동소유의 산에서는 대여 또는 마을의 산림계에서 공동으로 관리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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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송이 주산지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경북 울진, 영주, 봉화 지방과 강원도 강릉, 영양 지방이다. 특히 울진군은 화강암과 고운 토질(마사토라 불린다)과 청정 동해 바다의 깨끗한 공기가 잘 융화되어 더 없이 향기롭고 좋은 양질의 송이를 생산한다. 타 지역의 생산된 송이에 비해 울진송이는 표피가 두껍고 단단하며 특유의 향이 진할 뿐만 아니라 신선도가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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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식물의 종류. 식물상은 하나의 행정구역을 단위로 조사되는데, 국가나 대륙 등의 큰 규모에서부터 도·시·군 또는 산 등의 작은 교목에 이르기까지 조사 범위가 다양하다. 특히 소규모의 식물상을 지역 식물상이라고 한다. 경상북도 울진군은 산림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85.9%로 식생의 대부분이 소나무림으로 구성되었다. 대표 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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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금강송면 소광리를 지나 봉화군 동부 사이에 있는 고개. 19세기 전반 서울에서 태백산[봉화]에 이르는 길이 간선도로로 승격되어 7대로가 형성된 것과 맞물려 울진군 북면에서 봉화군으로 지나는 교통로인 십이령이 이 지역의 동~서를 연결하는 대표적인 도로이다. 이 고개는 십이령재 또는 십이령티라고도 일컬어진다. 즉, 울진 흥부-쇠치재-세고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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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에 있는 다리. 길이는 60m이며, 총 폭은 10m인데 실제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유효 폭은 8.5m이다. 차선은 왕복 2차선[편도 1차선]이며, 지상으로부터 다리의 높이는 7.3m이다. 1984년에 준공되었으며, 쌍전1교와 쌍전2교 모두 상부는 PCI공법에 하부는 T로 만들어졌다. 설계하중은 DB18까지 견딜 수 있다.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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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와 북면 두천리에 있는 신라시대 산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울진현 고적 안일왕산성조에는 ‘석축주칠백오십삼척금폐(石築周七百五十三尺今廢)’로 기록되어 있다. 안일왕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작 당시인 1530년에는 이미 폐성된 것으로 보인다. 안일왕성의 축성 기원과 연대에 대해서 『울진군지』에는 ‘실직왕(悉直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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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수차례 이루어진 벌목에서도 살아남은 금강송을 지켜온 사람들은 소광리 마을 사람들이다. 예전부터 소광리 사람들은 산불이 많이 나는 3월과 5월 사이 금강송 숲 일대에 산불이 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감시하였는데 이를 ‘불보러 다닌다’라고 하였다. 과거 마을 사람들이 불을 보러 다니는 터를 ‘불당터’라 부르는데, 이곳은 잿말의 너불한재 꼭대기로서 500년된 노송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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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봉이라 칭하는 토종꿀은 석청과 목청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소광리에서 주로 행하는 것은 후자인 목청으로 이 목청은 벌통을 만든 후 이곳에 벌집을 짓게 만든 후 그 꿀을 득하는 것을 말한다. 소광리는 1991년 경북도 고시 제208호에 의해 토종벌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 4㎞는 토종벌 보호지역으로 양봉이 금지되어 있다. 양봉은 토종벌을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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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 있는 수령 520년의 금강소나무. 소광리 소나무의 높이는 23m이며, 가슴높이 둘레는 3.5m이다. 1882년 조사시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에서 수령이 가장 많은 소나무로, 그 기원은 조선 성종대 1480년경으로 거슬러 간다. 황장목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송금정책을 펼쳐 지역의 금강소나무를 보호하였다. 이 나무는 금강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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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 있는 봉산의 경계를 표시한 표지석. 봉산(封山)은 국가에서 일반인에게 벌채를 금지하기 위해 실시한 제도이다. 왕실의 관곽(棺槨) 제작에 사용하기 위한 황장목을 확보하기 위해 일정 지역을 봉산(封山)으로 지정한 것이다. 황장봉산(黃腸封山) 제도는 1680년(숙종 6)에 시작되었으며, 이후 계속해서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어 19세기 초에 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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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전반 서울에서 봉화에 이르는 길이 간선도로로 승격되어 7대로가 형성되면서 울진군 북면에서 봉화를 연결하는 교통로인 십이령 길이 동서를 연결하는 대표 도로가 되었다. 울진의 흥부장·읍내장·봉화의 내성장 등 장시가 열리면서 이들 장시가 십이령 길을 통해 연결되었다. 십이령을 넘나들며 울진과 봉화 지역의 장시를 장악하였던 보부상이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퇴조하자 그 역할을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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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의 군목(郡木)으로 소나무과의 상록 침엽 교목 . 울진의 소나무는 우리나라 토종 소나무의 원형으로 가장 혈통이 좋다는 금강송(金剛松)이다. 금강송은 1992년 울진군목으로 지정되었다. 금강송은 적송, 춘양목, 황장목 등으로 불렸으나 울진군의 관광상품이 되면서 2000년부터 ‘울진소나무’로 통칭하게 되었다. 울진소나무가 잘 보존되고 있는 금강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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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지표상에서 전개되는 인간활동으로 나타나는 인문 사상(事象)을 지역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분야.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최동북단에 위치하며 동쪽은 동해안, 서쪽은 봉화군, 남쪽은 영덕군·영양군,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대상지는 평해읍 월송리에 자리하고 있다. 울진군은 총 면적 988.9㎢의 85%가 산지로, 평지가 적고 태백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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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리의 광천은 앞을 흘러가는 광천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일제시대 이곳에 광산이 있었다고 하여 광천으로 알려져 있다. 말 그대로 빛나는 하천이 있는 마을로, 일제시대 이 일대 자수정이 대량 묻혀 있는 정보와 함께 일본인 ‘고야’로 알려진 이가 이곳에서 광산을 시작하였다고 전해진다. 처음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이곳에 광산이 들어서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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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송 군락지를 올라가기 전 누군가가 검은색 명부를 들고 쫓아온다.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돌아서면 이내 산림청 소속의 모자를 쓰고 온 그는 일명 ‘숲해설가’이다. 1998년 자연환경안내자 과정을 이수한 교육생들이 자연환경안내자협회를 모태로 설립된 것으로 숲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리고 자연 친화적인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함양하도록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숲의 보존과 이용을 알리고 숲을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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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가 좋아 공기가 좋은 이곳에서는 일찍이 당귀를 비롯한 강활, 천궁, 고분 등의 약초를 재배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당귀는 마을에서 밭에 심어 건조해서 대구 약전골목으로 팔고 있는데, 과거에는 씨를 받아 뿌려서 그 종묘를 캔 뒤 한해 묵혔다가 캤다고 전해진다. 요즘 강원도에서 오는 종묘를 사용한다. 봄에 땅만 녹게 되면 종묘를 붓는다. 약 양력으로 2월 말 정도 되며, 이렇게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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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서 북면 부구리까지 연결되는 지방도. 지방도 917호선은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가 기점이고 북면 부구리가 종점인 도로로 길이 43.900㎞로 긴 편이다. 울진을 대표하는 금강송 군락의 절경을 벗삼아 이동할 수 있는 구간으로, 소광리 황장목 표지석, 금강송림, 금강송 체험장 등을 지나 울진군의 대표적 온천지구인 덕구온천지구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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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리마을에서 주변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산이다. 이곳의 겨울은 울진의 다른 지역보다 길다. 3월이 되어도 음지에 녹지 않은 눈으로 마을 사람들의 생활은 4월이 되어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태백산맥과 광천이 만들어낸 좁은 부지에 마을 사람들은 옹기종기 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하였다. 이 또한 부족하여 고개 넘어 집 2채, 이 고개 넘어 집 3채 등 모여 살 수 없는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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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국도를 따라 울진읍 방면을 가다 보면 불영사를 가는 36번 지방도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이 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 어느 듯 울진의 끝에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 때 소광리로 들어가는 표지판을 접한다. 소광리는 여기서도 다시 8㎞는 더 들어가야 하는 전형적인 산촌마을이다. 그나마 마을은 밀집되어 있지 않고 드문드문 흩어져 있어, 모퉁이를 돌아가면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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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이루어지는 학교 교육을 제외한 모든 형태의 조직적인 교육 활동. 2000년 3월 1일 「평생교육법」이 발효되어 종래의 사회교육이 평생교육이란 이름으로 확대·발전되었다. 울진군에서는 대구대학교 부설 울진여성대학과 울진문화원 부설 문화교실, 울진군종합복지회관, 울진자연생태학교, 울진군 청소년수련관 등에서 그 기능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 대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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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소광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금강송이다. 일제시대 광산으로 60년대 화전민촌으로 그리고 80년대 이후 산간오지로 알려졌던 이곳은 2000년 이후 일제히 금강송으로 다시 한번 더 주목을 받고 있다. 금강송이 자리 잡고 있는 대광천을 마을 사람들은 큰빛내라고 부르기도 한다. 처음 이곳에 화전민촌이 생기고 광산이 생겼을 때 마을 사람들은 빛나는 동네라 하여 그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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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리에서 송이는 현재 주요한 환금작물이다. 경지가 부족하고 토질이 척박한 이곳에서 송이는 비교적 많은 부를 가져다주는 환금작물이며, 그들의 경제력을 지켜주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 송이를 지키기 위한 마을 사람들의 노력은 외지인의 출입을 금하고, 송이를 채취하는 시기를 제한하는 등 갖가지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 중 하나로 주위 환경을 개선하여 송이를 장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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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리 대부분의 산은 국유림이지만 일부의 개인 산도 존재한다. 이러한 개인 산은 산의 주인만이 송이를 딸 수 있지만 국유림에서 나는 송이는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채취한다. 국유림의 송이는 산림청에서 무상양해를 얻어 마을 주민들이 채취하는데 과거에는 모두 무상이었으나 약 10년 정도 전부터 생산의 10%를 산림청에 낸다. 그렇게 무상양해를 받았으나 마을 주민들 전체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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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울진·삼척무장공비 침투사건은 소광리에 작은 변화를 만들었다. 화전의 특성상 소광리의 많은 가옥들은 뿔뿔이 흩어져 자신들의 집을 짓고 살아갔다. 넓은 소광리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화전민들은 골골 화전을 할 수 있는 곳에 터를 닦았다. 골짜기 이름과 화전의 불빛만으로 저곳에 누가 살고 있는지를 짐작하고 연락을 했던 그들에게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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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이 벌목에 불을 켰던 금강송은 일찍이 조선에서도 보호하고자 노력했던 소나무 중 하나였다. 그 흔적으로 소광리에서 금강송 숲에 들어가기 전 약 2㎞, 지점인 광천 왼쪽에 황장봉계표석이 있다. 이는 금강송의 우수함이 잘 알려져 있어 궁궐이나 국가의 주요한 건물을 지을 때 이외에는 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금강송이 있는 황장봉산의 경계를 표시한 자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