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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울진문화대전 > 울진의 마을 이야기 > 죽변4리 > 군사요충지에서 항구도시로 > 동해안 군사요충지 죽변곶

  • 울진 고대사의 시원 죽변패총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패총은 해안·강변 등지에 살던 사람들이 버린 조개·굴 등의 껍데기를 쌓여서 무덤처럼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패총이 신석기시대 형성되었다가 어업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철기시대에 많은 패총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삼국시대 이전 고대사회의 유적 흔적이 드문 울진군에서 죽변4리의 패총은 원삼국시대 유일한 것으로 그 의미를 가진다. 패총은 과거로부터 이곳에 주거단지를 형...

  • 대화살 재료 원산지 죽전숲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죽변(竹邊), 대나무로 이루어진 곳이라는 뜻으로 지명에서 이곳에 과거 또는 현재 대나무가 많았거나 많이 자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죽변 일대에서도 죽변등대가 위치한 죽변곶은 그 주변이 모두 대나무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은 연신 대나무숲을 흔들어대고, 숲 사이로 들어가면 마치 대나무숲에 들어간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지금은 관광단지화가 된 이곳의 대나무는...

  • 왜구의 침입을 막던 죽변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성지는 축성(築城)의 목적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첫 번째로 거주주체인 주민들을 보호함과 동시에 행정·군사적인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 있으며, 두 번째로 순전히 군사적인 목적으로 축성한다. 전자는 읍성이 그 대표적 형태이며, 후자는 산성이 이에 해당단된다. 죽변4리에 위치한 죽변성은 후자의 것에 속한다. 죽변성에 관련된 기록은 지지(地誌)에는 전하는 바가 없으며, 그...

  • 천혜의 해로를 따라 울릉도를 왕래하던 곳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숙종(肅宗) 28년(1689) 5월 기유(己酉) 기사에는 ‘울진 죽변진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로 갔다’라는 기사가 있다. 당시 울릉도로 가기 위한 주요 항로로서 죽변이 이용되었음을 대변해 준다. 그러나 일찍이 울릉도로 가기 위한 해로로 죽변이 이용되었음은 기록에서만 확인되는 바는 아니다. 실제로 죽변항은 울릉도와 80마일(128㎞)의 거리로서 동해안...

  • 근대화의 바람은 죽변등대에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죽변의 지리적 위치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이로 인해 신라시대에는 왜적을 막기 위해서 이곳에 죽변성을 쌓고 수군을 상주시켰다.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인들은 죽변곶에 망루와 등대를 설치하여 러시아군의 동해안 진출을 감시하였다. 죽변곶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 등대는 일본인이 러시안군의 침략을 감시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처음 건립되었다. 그러나 등대의 건립 이후 죽변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