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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읍성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489
한자 古邑城址
영어의미역 Goeupseong Fortress Sit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446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이희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읍성 터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고려 말
지정면적 50,975㎡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446 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읍성지.

[변천]

고읍성에 관한 문헌 사료의 기록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재현동오리(在縣東五里)’라 하여 당시 시점을 고산성(古山城)에 읍치를 두고 구 읍지로서 울진읍성[고읍성]을 바라보았다. 둘째, 고읍성의 둘레는 1,210척으로 기재되어 있다. 1,210척을 당시의 교정 척도로 환산하면 약 377m이다. 이는 작은 성으로 고현성(古縣城)에서 옮긴 초축의 읍성으로는 볼 수 있으나 고산성을 오가며 수차례 증축한 후대의 성지는 아닐 것이다. 셋째, 성은 토축으로 축성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실제 조사에서도 고읍성이 몇 차례의 증축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토성으로 계속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문헌 사료들과 각종 군지와 읍지를 토대로 고읍성의 변동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1371년(공민왕 20)에 왜구의 급습으로 인해 고현성이 소실됨에 따라 현령 어세린(於世麟)이 울진읍 내 옥숙리[현 울진초등학교]로 옮겨 성보를 축조하였다. 1396년(태조 5)에 왜구의 내침으로 옥숙리의 현성이 소진된 후 한성판윤 장순열(張巡烈)의 상소로 고산성으로 옮겼다.

1528년(중종 23)에 전 경흥부사 장백손(張伯孫)이 상소하여 산성은 도로가 험난하고 식수가 부족하다고 하여 옥숙리로 환읍하였다. 1556년(명종 11)에 관찰사 윤인노(尹仁怒)와 현령 이언화(李諺華)가 상의하여 또 다시 고산성으로 옮겼다. 1621년(광해군 13)에 유림 남홍(南鴻) 등이 상소하여 현령 이웅남(李雄男)이 또 다시 옥숙리로 옮겼다. 1679년(숙종 5)에 현령 최진창이 옥계리[현 군청, 전 경찰서지]로 옮겨 오늘에 이른다. 군소재지는 1914년에 읍내리로 개칭되었다. 현재는 1·2·3리로 나뉘어 소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위치]

고읍성은 현재의 군청사 북쪽, 울진초등학교 서쪽 능선 일대로 고현성에서 서쪽으로 직선 거리로 약 1.5㎞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성의 남쪽 자락에는 울진향교가 있고, 향교를 돌아 북동쪽으로 난 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해발 57.8m 지점에 충혼탑이 있으며, 등산로 일부분은 고읍성의 성벽 일부와 중복되어 있다. 충혼탑을 지나 북쪽의 약간 평탄한 산 정상에는 상수도수원지가 설치되어 성의 연장선을 망실시키고 있어 성벽의 흔적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상수도수원지를 지난 성의 연장선은 최정상부인 해발 61.2m 고지를 돌아 동쪽으로 급격히 내려오고 있다. 능선 척추부를 따라 축조된 성은 한국전력 울진출장소 건물 앞으로 빠져 나와 구성 소라아파트 놀이터 옆에서 끝난다.

[현황]

성의 현 잔존 길이는 550m이며, 성 안의 면적은 50,975㎡이다. 성의 전체적인 형태는 남서쪽은 울진 남대천에 연접해 있으며, 북쪽과 서쪽은 야트막한 능선이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삼태기 모양을 하고 있다. 성은 향교·충혼탑·상수도수원지·소라아파트 등의 건립으로 인해 원형의 상당 부분이 훼손되거나 망실된 것으로 판단된다. 읍치의 중심부는 현재의 울진초등학교 일대로 추정된다.

울진향교에서 충혼탑에 이르는 산로는 읍성벽의 일부분이었을 것으로 판단되나 포장 도로 개설로 인해 성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충혼탑 서편으로는 경사가 급한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토성의 토루 흔적이 일부 확인된다. 토루의 밖으로는 남대천에 바로 접하여 강을 이용한 1차적인 방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능선 척추부를 이용한 토루의 안쪽인 성 안으로는 폭 1.5m의 토단을 두어 내부 회곽도가 마련되었으나, 현재의 등산로와 중복되어 있어 분명하지 않다.

충혼탑의 북편 공터에서는 와편이 집중적으로 채집되었다. 여기서 북쪽으로 가면 상수도수원지가 있다. 상수도수원지를 가로질러 다시 북쪽의 해발 61.2m 고지를 향해서는 능선의 완만한 경사를 따라 토성벽의 흔적 일부가 남아 있다. 정점을 돌아 동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의 척추부에는 성벽의 흔적이 선명하게 확인된다.

현존하는 토성벽의 상면 폭은 160㎝이고, 성 밖의 자연 경사면은 높이 230㎝까지 남아 있으며, 성 안으로는 높이 100㎝ 정도 남아 있다. 원래의 토성벽은 이보다 더 높고 튼튼하게 축조되었을 것이나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삭토되고 함몰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구간에 남아 있는 토성벽의 길이는 약 110m 정도로 다른 구간에 비해 잘 남아 있는 편이다. 남아 있는 토성벽의 끝단은 울진읍 구성동 상아맨션 어린이 놀이터로 바로 연결되어 있어 맨션 개발 당시 토성벽의 일부가 망실된 것으로 보인다.

와편이 집중적으로 채집된 충혼탑의 북편 공터 일대에 산성과 관련된 건물지가 남아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토성벽 연장선상은 다소 평탄하여 건물이 입지하기에 좋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현재 토성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으나 민묘와 공원화[취수장] 공사로 인해 훼손이 심해 뚜렷한 유구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이곳에서 채집된 와편은 대부분 어골문계의 평와(平瓦)들로 명문와나 막새류가 없어 정확한 연대를 알 수는 없으나,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와류로 생각된다.

[의의와 평가]

고읍성은 대부분의 울진군 내 토읍성과 마찬가지로 반원상의 구릉을 이용한 삼태기형으로 자연 지형을 잘 활용하여 능선의 척추부를 따라 토석 혼축으로 축조한 성으로 판단된다. 일부 구간에서는 내부 회곽도를 마련해 놓았으며, 성벽 상층에서는 와편이 다수 출토되고 있어 성과 관련된 건물지가 남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읍성지가 위치한 산의 정상에는 상수도수원지가 설치되어 있어 성벽의 흔적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울진읍 내에서 가장 높은 곳을 선정하여 상수도수원지를 개발한 것이겠지만, 여러 문헌상에 이미 이 일대가 고읍성지로 전해오는 상황에서 이곳을 수원지로 개발한 점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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