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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법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616
한자 養性法師
영어의미역 Buddhist Monk Yangseong
이칭/별칭 몽선(夢仙),중열(仲悅),혜능(惠能),양성당대사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1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황정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승려
출신지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1리
성별
생년 1442년연표보기
몰년 1516년연표보기
본관 영양(英陽)

[정의]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승려.

[가계]

속성은 남씨로 본관은 영양(英陽). 아명은 몽선(夢仙)이고, 자는 중열(仲悅), 법명은 혜능(惠能)이다. 어머니는 행주전씨이다. 1442년(세종 24)에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1리에서 출생하였다.

[활동사항]

1453년(단종 1) 12세에 승려 응철(應哲)을 좇아 출가하여 불영사에서 수계(受戒)를 받았다. 8년간 정진하여 모든 불경에 통달한 뒤 천조대사(天照大師)와 호구당(虎丘堂)에게 수행하여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성품은 어질고 후덕하여 보시하기를 기꺼이 하였으며, 계율을 엄히 지켰다. 명산 고찰을 찾아 주유하기를 좋아하여 두류산, 금강산, 오대산, 치악산, 태백산, 소백산 등을 찾아 수행하였다.

어느 날 홀연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고 탄식하기를 “도를 구하는 데는 다른 방도가 없으니 사람이 근본을 돌이키지 않는 것은 어찌 일찍 떠난 고향에 돌아감을 잊는 것과 다르리오” 하며 마침내 불영사로 돌아와 머물며 수도하는 집에 현판을 달아 양성당(養性堂)이라 했다. 1516년(중종 11) 12월 17일 세수 75세, 법랍 64세로 입적하였다.

양성법사에 관해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인현왕후는 폐출된 뒤 5년이란 세월을 눈물로 보내다가 마침내 자결을 결심하고 독약 그릇을 앞에 놓고 하염없이 울다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한 백발 노승이 나타나 천축산 불영사에 있는 중이라면서 3일만 기다리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지자, 인현왕후가 이를 매우 기이하게 여겨 3일을 더 기다렸더니 과연 왕후의 자리에 다시 오르게 되었다.

그 후 숙종이 이 이야기를 듣고 꿈속의 노승을 찾으니, 1516년(중종 11)에 세상을 떠난 양성법사의 화상과 같으므로, 부처님의 은공을 갚기 위해 불영사를 중심으로 한 사방 10리 안에 있는 토지를 불영사에 시주하였다 한다.

[상훈과 추모]

불영사 남동쪽 동구에는 양성당 부도와 부도비가 있다. 부도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석종형 부도로 지대석과 기단석, 탑신의 3석으로 구성되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2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도비는 비좌와 비신, 개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좌는 장방형으로 너비 101㎝, 높이 38㎝, 두께 69㎝, 재질은 화강암이다. 앞면에 안상 3구, 옆면에 안상 1구를 새겼으며, 뒷면에는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다. 비좌 윗면에는 각형 2단을 각출하였다.

비신은 장방형으로 너비 58㎝, 높이 120㎝, 두께 17㎝, 재질은 대리석이다. 4면을 모두 편평하게 다듬었다. 개석은 팔작지붕 모양으로 너비 90㎝, 높이 38㎝, 두께 71㎝, 재질은 대리석이다. 낙수 면에 기왓골은 표현하지 않았으며, 하면에 각형 3단을 각출하였다.

명문은 양성법사의 수제자 천옥대사가 최석정에게 청하여 지은 것으로 비신의 앞면과 뒷면에 음각하였고 계선은 긋지 않았으며, 글씨는 해서체로 행서장법이다. 앞면의 글자 크기는 너비 2.5㎝, 폭 2.5㎝로 거의 비슷하나, 뒷면의 글에는 너비 3.5㎝, 폭 3.5㎝의 크기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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