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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718
한자 江陵金氏
영어의미역 Gangneung Gim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노음리|울진읍
집필자 이창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경상북도 울진군
집성촌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노음리|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입향시기/연도 1780년연표보기
성씨시조 김주원
입향시조 김광택|김응상

[정의]

김주원을 시조로 하고 김광택과 김응상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연원]

강릉김씨의 시조 김주원(金周元)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21세손으로 시중겸병부령(侍中兼兵部令)를 지냈다. 신라 하대의 진골 출신이며, 아버지는 각간(角干)을 지낸 김유정(金惟靖)이다. 그는 무열왕의 둘째아들인 김인문(金仁問)의 5세손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무열왕의 셋째아들인 문왕(文王)의 5세손이라고 한다.

785년(선덕여왕 6) 선덕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군신 회의에서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그런데 그가 살던 경주의 알천 북쪽에 갑자기 큰 비가 내려 알천을 건널 수가 없어 입궐을 못하였다. 그러자 군신들이 이는 “하늘의 뜻이다”하며 상대등 김경신(金敬信)을 왕으로 추대하니 원성왕이었다.

비가 개인 후에 왕이 김주원에게 왕으로 즉위할 것을 권하였으나 사양하고 어머니의 고향인 강릉으로 내려갔다. 왕은 그의 겸손함에 감복하여 명주군왕(溟州郡王)에 봉하고 명주·익령(翼嶺)·삼척(三陟) 등 영동 지방을 통치하게 하였으며, 강릉을 식읍으로 하사하였다.

[입향경위]

김광택은 1780년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사대부와 교류를 하기 위해 울진을 지나치던 중 울진의 자연 환경에 심취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김응상 역시 영남의 사대부와 교류를 도모하던 중 산세 깊은 울진에 은둔하게 되면서 정착하였다.

[현황]

김광택과 김응상의 후손들은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노음리울진읍, 그리고 서울·대구·부산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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