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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1846
한자 斗川里城隍堂
영어의미역 Village Guardian Shrine in Bugu-ri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1리 산25
집필자 김도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성황당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1리 산25 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1리에 있는 성황신을 모셔놓은 제당.

[개설]

울진에서 동서 방향을 연결하는 주 도로인 십이령 길은 출발 지점이 울진·죽변·흥부이다. 출발 지점에 따라 노정이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결국 북면 두천리를 지나 바릿재와 샛재를 거쳐 봉화로 향하는 길이다. 즉, 바릿재 아래에 있는 두천리를 거치는 길이 울진과 경상북도 내륙인 봉화에 이르는 주요 도로였던 것이다.

이에 두천리는 예전부터 농업을 주업으로 하면서, 주막이 있어 보부상이나 선질꾼들이 거쳐가는 주요 길목이었다. 두천리에 속한 마을 중 십이령에는 안말래바깥말래[원말래]라는 2개의 자연 마을이 있다. 바깥말래는 흥부에서 세 고개를 지나 있는 마을인데, 마을에는 큰 서낭[큰당, 큰집]이라 부르는 마을 제당이 있다.

[위치]

두천리 성황당은 두천1리의 주막등이라고도 불리는 안말래 동편 구릉 하단에 위치해 있다.

[형태]

두천리 안말래 성황당은 홑처마에 양철로 이은 맞배지붕으로, 크기는 정면 1칸, 측면 1칸이다. 제당 정면 입구 위에는 ‘성황사(城隍祠)’라 쓴 현판이 걸려 있으며, 제당 주위로 강돌을 이용한 담장을 방형으로 둘렀다. 제당 내부에는 정면에 제단이 있고, 그 위에 정면을 가로질러 줄을 건 후 여기에 한지를 걸었던 흔적이 있다.

정면 위를 가로지르는 기둥에 ‘성황신위(城隍神位)’라고 가로로 쓴 위패를 걸어두었고, 내부 오른쪽에 별도의 제단이 하나 더 있다. 천장에 ‘기해년 정월 이십칠일미시입주상량(己亥年 正月 二十七日未時立柱上樑)‘이라고 묵서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건물이 기해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제당 주위에는 신목으로 위하는 고목이 둘러져 있다.

[의례]

매년 음력 정월 보름과 6월 30일에 서낭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제수는 메·술[막걸리]·나물[무·콩나물]·어물[가자미·명태·열기·문어]·백설기[시루째 올림]·탕·삼색실과·포를 준비하여 올렸으며, 육고기는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제관은 3명으로, 제수 준비도 하였다. 예전에 유사가 있을 때는 유사가 제수 준비를 하였다고 한다.

제의 순서는 다른 마을과 유사하나, 이 마을에서는 서낭을 모시고 다니는 하위 신인 ‘수고’가 서낭신을 잘 모시고 다닐 것을 기원하며, 수고신을 위한 제를 함께 지냈다. 서낭고사 후 서낭신을 위해 올린 제수 몇 가지를 수고신을 위해 오른쪽에 마련된 별도의 제단에 옮겨놓고, 잔을 한 잔 올리고 제관들이 합동 재배하였다고 한다.

[현황]

서낭제사를 위한 제비(祭費)는 각 가구별로 갹출하여 충당하였다. 6·25전쟁을 지나면서 선질꾼들에 의한 상업 교류가 점차 약화되고, 불영계곡 옆으로 난 국도 36호선을 이용하여 경상북도 내륙과 울진이 연결됨에 따라 두천리는 점차 쇠퇴하고, 마을의 세가 점차 약화되면서 서낭제사에 대한 관심도 점차 약해져서 2003년경부터 지내지 않고 있다. 선질꾼들이 두천리에 있는 주막에 머무르거나 쉬어갈 때, 일부 선질꾼들이 서낭당에 들러 행로의 안전 등을 기원하며 절을 하고 가는 예도 목격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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