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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가을 밤새도록 쉬지 않던 매야 방앗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B020301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2리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2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여수경

1967년 매화마을에 정미소가 들어서기 전 현 마을회관 뒤편에 있던 연자방아는 봄과 가을 쉴틈없이 돌아갔다. 마을내 유일한 연자방아는 현재 마을회관 뒤편에 있었으며, 맞은편 도정공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마을에서 생산되는 곡식을 빻는 역할을 하였다. 근래까지 연자방아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 원형을 유지하며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곧 나무로 된 그 틀이 무너지면서 현재는 연자방아의 머리에 해당한 돌만이 전하고 있다. 현재 그 연자방아의 머리에 해당하는 돌이 마을 복지회관 옆으로 옮겨두어 과거에 마을에 연자방아가 있었음을 기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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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수 가옥

연자방아를 대신하여 마을에서는 정미소가 1967년 설립되었다. 도정공장은 설립에 대한 이야기는 1967년 1월 20일 마을회의록에서 확인 가능하다. 당시 마을회의에서는 도정공장 설립건을 의제로 내놓았고 전 동민의 찬성에 의해 시설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은 매화리 개발위원회에서 수립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도정공장은 새롭게 신설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시설을 활용하는 것으로 논의가 되고 있었는데 이것이 잘 해결되지 못해 몇 번 난항을 거듭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후 농촌진흥청의 증산자금과 마을 자체 자금 등을 합하여 기존시설에 일정한 대여비를 지불하고 도정공장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1998년 도정공장이 멈출 때까지 봄과 가을 이곳에서는 기계가 돌아가는 원동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봄이 되면 보리를 탈곡하는 소리로 도정공장은 쉼 없이 돌아가고 가을이 되면 벼를 탈곡하는 소리가 마을에 울렸다. 마을의 부유함은 도정공장의 소리로 알 수 있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매화마을은 과거 경제적으로 부유했음을 반증해준다. 당시 이곳의 도정공장은 전기모터를 이용한 원동기로 돌아갔지만 그 소음이 없었으며 작업능률이 좋아 단 몇 시간이면 작업을 마치는 편리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개인의 소유가 되어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매화마을에서 생산된 쌀은 2008년 현재는 미곡처리장에서 보내져서 쌀 주문이 접수되면 도정해서 판매된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매화마을에서는 인근 매화정미소를 많이 이용한다. 매화정미소는 1959년 당시 이곳에서 거주하였던 이원철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그의 아들이 뒤를 이어서 운영하고 있다. 1960년대 이곳에 넓은 들을 이용하여 많은 쌀이 생산됨에 따라 원남면[현 매화면] 일대에는 12군데가 넘는 정미소가 있었다고 한다. 매화마을에 위치한 도정공장도 당시 성업했던 정미소 중 하나였고, 이후 문을 닫은 후에는 많은 부분 매화정미소를 이용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매화정미소를 이용하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도정공장에는 40㎏ 한포를 넣으면 최하 28㎏의 쌀이 나온다. 그러나 매화정미소에는 30㎏이 나오기 때문에 도정하고 난 다음에 보다 많은 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을 많이 이용한다. 정미소로 들어간 벼는 정선기와 석발기(벼에 섞인 돌을 골라내는 기계), 현미기를 거쳐 풍구(벼에 섞인 쭉정이, 겨, 먼지 등을 바람으로 날려서 제거하는 기구)와 공중 풍구(윗풍구)를 통과한다. 그리고 정미기를 거치면서 껍질이 깎이고 분리기를 거치면서 깎인 나락과 덜 깎인 현미가 별도로 분리되어 정미기로 되돌아온다. 마지막 한번 더 연마기를 거치게 하면서 싸라기와 쌀알을 걸러내는 작업을 하면 마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울진생토미’라 적힌 포장지내에 넣는 것으로 마지막 상품으로 소비자에게 팔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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