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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이 만든 동해안 천혜의 어업기지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D010201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4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명동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의 죽변항은 지나간 시간동안 포(浦)에서 진(津)으로 1900년대 이후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항구로 탈바꿈하면서 오늘날에는 동해안의 어업기지로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죽변의 이러한 변화는 어디서 기인되는 것일까. 『한국수산지』에는 죽변의 입지적 조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죽변의 용추갑은 높은 언덕을 정점으로 해서 북서쪽보다 남동쪽으로 뻗어 있고, 그 남단은 점점 남쪽으로 향해서 그 남서쪽에 반월형상을 한 만을 형성하고 있다. 서쪽 및 북쪽 풍랑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풍을 헤쳐 나가기에 충분하다.

죽변이 반월 모양을 한 만을 형성하고 있어 지리적으로 안정적이며, 동해안 연안에서 북쪽과 남쪽을 연결하는 중간 정착지로서 중요성을 지적한다. 그러나 죽변의 항만으로서 적합성에는 죽변만 주변의 수심에도 연결된다. 죽변은 만내가 약 1천5백미터 내지 1천8백미터되는 항만으로서 수심이 매우 깊어 작은 기선의 정박에 용이할 뿐만 아니라 서쪽 내륙에 이르는 맞은편 모서리 부근은 수신 5~6m의 얕은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져 기선(汽船)의 정박지가 되는 곳이다. 조선총독부에서는 이러한 죽변에 대해 ‘죽변은 완벽한 항구까지는 되지 않지만 강원도 중에 손꼽히는 요항이며, 100톤 내외의 작은 기선을 정박시키는데 충분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울진군은 1963년까지 행정적으로 강원도 관할이었지만, 이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경상북도로 편입되었다. 조선총독부의 『조선산업지중(朝鮮産業誌中)』은 편찬년도가 1910년임에 따라 울진군은 강원도에 속한다.

1938년 죽변항의 축항이 시작되면서 항구로서 어업기지로서 죽변항은 변모를 시작한다.

방파제를 축조하고 부산~원산간 정기여객선이 왕래를 하며, 어업조합이 설립되어 위판장이 설치되는 등 외부로부터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으며 죽변항은 큰 변화의 바람과 함께 어업기지로서 자리 잡기 시작한다. 1932년 11월 23일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에는 1912년부터 시작된 조선총독부의 항만수축 공사에서 후포만 포함되고 죽변이 제외되자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글을 실었다.

蔚珍은 江原道의 東海岸에 한 僻村이다. 그 뿐 아니라 겨우 風波를 僻할만한 정도의 津임으로 古來의 一寒村이다. 그러나 洋洋한 日本海를 隔하여 日本과의 經濟的 結成을 힘쓰고 있는 한편 慶北 鬱陵島와의 海路가 됨은 勿論이요 釜山과의 去來關係는 날로 密接하여 가는데 따라 近來에는 大邱 方面의 去來도 종종 浦港이란 關門을 거쳐서 들어오게 되었다.

來春부터는 慶北 春陽으로 새로운 二等道路工事着手는 이미 確定되엇다. 그뿐이랴 隣近三陟에는 海軍의 無煙炭鑛이 잇어 平壤炭보다도 더욱 憂民하다보니 반드시 不遠한 날에 그 發掘을 볼 것은 틀림없는 事實일 것이요. 또 守山金鑛은 이미 發掘에 着手하얐다. 그뿐 아니라 東海岸北部線大鐵道는 北으로 이미 通川에 이르렀고 南部線은 蔚山까지 開通을 보게 되엇다. 그럼으로 竹邊의 築港問題는 蔚珍의 死活問題다. 그런데 竹邊의 人士를 보면 이 大勢를 理解치 못하고 對炭火視하고 잇으니 抑河心情고 郡民의 구기를 족한다.

(해제: 울진은 강원도 동해안의 한 벽촌이다. 그 뿐 아니라 겨우 풍파를 이길 만한 정도의 포임으로 오래전부터 벽촌 중 하나였다. 그러나 동해[원문에는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음]와 접하고 있어 일본과의 경제적 결성을 힘쓰고 있는 한편 경북 울릉도와의 해로가 되며, 부산과의 과거관계는 날로 밀접하여 가는데 따라 근래에는 대구 방면과 포항까지도 연결되고 있는 관문이 되고 있다.

이듬해 봄에는 경북 춘양으로 새로운 이등도로공사가 착공될 것이 이미 확정되었다. 그뿐이 아니라 인접하고 있는 삼척에는 해군이 사용하는 탄광이 있어 빠른 시일내에 발전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또 인근의 수산금광은 이미 발굴에 착수하였고, 뿐만 아니라 동해안북부선대철도가 이미 북으로는 통천에 이르렀고 남부선은 울산까지 개통을 보게 되었다. 따라서 죽변의 축항 문제는 울진에서는 중대한 문제이다. 그런데 죽변의 인사를 보면 이 대세를 이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으니 한 군민으로서 통탄을 금치 못할 지경이다.)

위 신문의 내용에서는 1968년 울진군에서는 다시 동해안 유일의 생산항구로서 500여척의 어선이 집산하는 죽변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근대화의 시급성을 강조하였다. 죽변이 북쪽과 남쪽의 연결하는 주요 통로로써 그리고 주변 채굴된 광산의 금광들을 옮길 수 있는 항구로써 기능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죽변의 축항이 시급한 문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후 1979년에는 국가의 경제개발 5개년 개획에 힘입어 방파제 667m, 미축항 308m, 물양장 805m의 확충 및 무인등대 2개소 설치가 되었다.

그리고 후포항과 함께 항만청 관할 어항이 되면서 1995년 죽변항은 어항구역 2,233,000㎡, 방파제 708m, 물양장 1,249m, 방사제 308m의 기반시설을 갖추고 어업기지로서 변모하였으며, 1995년 12월 29일에는 해운항만청 관리 연안항에서 해제되어 제1종어항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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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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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항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4.19 일본해 수정 일본해를 동해로 수정하고 원문에는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음으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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