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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인물 없어도 먹고 살기 좋은 안말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E010103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
집필자 신상구

두천1리 바깥말래에서 봉화 방면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재를 하나 넘으면 산능선을 넘어서 마을이 보인다. 속칭 안말래 또는 원말래라 부르기도 하는 두천2리는 마을 앞으로 북쪽에 위치한 세덕산에서 발원한 말래천이 지나간다. 안말래는 본 마을인 안말래와 사기골, 장평 세 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말래는 다시 서낭골과 밤나무골로 구분된다. 서낭골은 안말래에서 넘어오는 입구를 지칭하며 밤나무골은 현재 마을회관을 기점으로 뒤쪽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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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천1리 앞 들

마을형국은 부채살형국으로 ‘큰 인물을 안 나도 먹고 살기 좋은 곳’이라 불리며, 말래천을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에 마을 사이로 크고 작은 들이 형성되어 있다. 성황당을 중심으로 앞에 펼쳐진 성황들과 말래천 너머에 있는 건너들 그리고 금강송면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사기정들은 마을이 넘치진 않지만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식량을 사람들에게 주고 있다. 그리고 ‘안말래’라는 명칭에서처럼 물이 부족하지 않고 흔하다는 뜻의 이름과 같이 마을 주변의 들에는 각각 섬갱긴보, 닷마지기들보, 도래보, 집앞보 등이 있어 산골이지만 농사를 짓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두천2리 주민들은 말래천과 그리고 세덕산이 만들어낸 들과 보를 바라보면서 자신들은 이 덕분에 이밥(쌀밥)을 먹고 살았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마을의 역사는 약 360년으로 추정하는데, 정확한 입향조는 알 수 없으며 현재도 전씨를 비롯한 경주최씨, 영해박씨, 울진장씨 등 다양한 성씨 19가구가 공존하며 살고 있다. 안말래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골짜기의 작은 마을은 사기장골이며 정선전씨가 개척하였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4가구만이 거주하며, 장평은 두천1리에서 두천2리 안말래로 넘어가는 고개 우측 텃골에 위치한 마을인데, 1968년 울진·삼척공비사건 마을 주민이 모두 외지로 빠져나가고 현재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다. 진주강씨가 개척한 마을로 추정되며, 이후 영양남씨가 들어와 거주하였으며, 1943년에는 27호 이상이 이곳에서 생활하였다고 한다.

장평 지역에도 두천 주막거리와 같은 주막이 4곳 있었다. 1968년 무장공비 사건으로 이곳에서 내려오기 전까지 시어머니의 대를 이어 주막을 경영한 곳이 있었다. 주막은 가족들이 사용하는 공간과 분리되지 않았고, 한 집에 가족방과 부엌 그리고 선질꾼이 자는 방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이불은 필요 없었다. 장평동은 이 주막으로 장평주막 또는 ‘쟁팽주막’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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