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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의 관심과 십이령바지게꾼놀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E020302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
집필자 신상구

1953년 교감으로 승진하면서 농악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울진군 내 농악을 보급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각급 학교에 농악을 보급하기 위해서 노력하였고, 1988년 정년 퇴임 후에는 본격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십이령바지게꾼놀이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북면에서 생활하면서 당시 선질꾼이라 불리는 바지게꾼들을 익히 보았던 그는 집 앞을 지나가는 바지게꾼들이 부르는 노래가 기억이 났으며, 그리고 그 노래를 찾아가기 시작하였다.

노래소리를 찾아서 채록하는 과정에서 두천리마을이 과거 선질꾼들의 주막으로서 선질꾼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그곳으로 노래소리를 채록하였다. 선질꾼들은 이미 죽고 없어 그 기억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생김새와 노래 등을 채록하는 과정을 거치기를 몇 번 그리고 십이령바지게꾼놀이가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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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령 바지게꾼 놀이 공연

미역소금 어물지고 춘양장은 언제가노

대마담배 콩을 지고 울진장을 언제가노

반평생을 넘던 고개 이 고개를 넘는구나

서울 가는 선비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고

오고 가는 원님들도 이 고개를 자고 넘네

꼬불꼬불 열두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

가노가노 언제가노 열두고개 언제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

두천에서 그가 채록한 선질꾼들의 노래이다. 이를 배경으로 선질꾼들의 이야기를 극으로 풀어내고 1980년대 중반에는 이를 실질적으로 재연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규형이 생각하는 십이령바지게꾼놀이는 자동차도 어떤 편리한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 울진을 왕래하면서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간 우리네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놀이이다. 그리고 이 놀이가 울진에서가 아닌 전국적으로 알려져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다. 지금은 아직 고증이 완벽하게 되지 않아 거칠고 서툰 면이 없잖아 있지만 지역에서 전해져 오는 자료를 발굴하고 이를 이어나가는 사실에서 십이령바지게꾼놀이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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