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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484
한자 烽山里先史遺蹟
영어의미역 Prehistoric Site in Bongsan-ri
이칭/별칭 봉산리 유적,봉산리 주거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물 산포지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봉산리 산3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홍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선사유적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봉산리 산3 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봉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위치]

봉산리 선사유적 북쪽으로는 태백산맥 금장산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정명천(正明川)이 있다. 정명천 하구에는 충적지대와 넓은 사구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봉산리 선사유적정명천의 남쪽으로 태백산맥에서 뻗어내려 바다까지 형성된 해발 45~67m의 낮은 구릉지대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이 일대는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경주와 포항에서 삼척과 강릉으로 통하는 동해안의 교통로로 민무늬토기 문화의 전파와 교류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곳이다.

유적의 남단부는 국도 7호선에서 봉산리로 넘어가는 도로 개설로 인해 일부가 파괴되었으며, 절개된 구릉의 단면에서 청동기시대 토기편과 주거지의 단면으로 추정되는 유물포함층이 확인되었다. 유적에서 동쪽으로 약 200m 가량 떨어진 지점에는 봉산리 항곡마을이 자리하며, 그 너머에는 동해가 펼쳐져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봉산리 선사유적은 울진공항 건설에 따른 문화유적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1998년 강릉대학교 박물관에 의한 지표 조사로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1개소가 확인되었으며, 1999년 시굴 조사에서는 주거지 3기와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2001~2002년 중앙문화재연구원에 의한 발굴 조사로 강릉대학교 박물관이 조사한 주거지 3기를 포함하여 전체 5기의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움무덤[土壙墓] 26기, 구덩 유구[竪穴 遺構] 5기, 고상 가옥(高床 家屋)으로 추정되는 기둥 구멍[柱穴群] 1기 등 총 37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형태]

청동기시대 유구는 대부분 평면이 장방형인 움집 터로 추정되나, 출토유물이 빈약하고, 경사면 하단부가 대부분 유실되어 정확한 형태와 특징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3호 주거지는 남쪽이 유실되기는 했으나 내부에서는 다수의 기둥 구멍과 함께 무시설식의 화덕자리[爐址]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다수의 기둥 구멍은 전체적인 배치 상태가 불규칙하고, 경사면 아래쪽이 유실된 관계로 정확한 기둥의 배치 등 구조적인 면을 파악하기 어렵다.

3호 주거지를 제외한 나머지 주거지들의 바닥에는 기둥 구멍과 화덕시설 등 다른 시설이 보이지 않는다. 주거지 모두 바닥면은 생토면이며, 풍화화강암반을 정면하여 그대로 이용하였다. 1호 주거지를 제외한 나머지 2호·3호·4호·5호 주거지에서는 화재 흔적이 남아 있어 주거지의 폐기와 관련될 가능성이 있다.

[출토유물]

유물은 구멍무늬토기편 등 75점이 출토되었다. 1호 주거지에서 구멍무늬토기편, 3호 주거지에서 두형 토기 대각편(豆形土器 臺脚片), 5호 주거지에서 석착(石鑿: 편평편인석부(扁平偏刃石斧))이 출토되었다. 구멍무늬토기편과 두형 토기 대각편은 이 유적의 편년을 설정할 수 있는 자료이다. 그 밖에 민무늬토기편들은 주거지 5기 모두에서 수습되었다. 지표 조사에서 민무늬토기편들과 함께 원형 덧띠토기편과 간돌검[磨製石劍] 등이 수습되었다.

[의의와 평가]

봉산리 선사유적은 출토유물과 입지 조건 등으로 보아 강릉시 포남동·방내리·포월리·교동·속초 조양동 등 강원도 동해안 지역 청동기시대 유적과의 유사성이 관찰된다. 울산과 포항 등 영남 동부 지역과의 문화적 영향 관계도 살펴볼 수 있다.

지표 조사에서 수습된 원형 덧띠토기는 양양 강선리와 춘천 칠전동 등에서 확인되며, 울진 지역 민무늬토기시대 후기와 말기의 문화상을 밝히는 단서이다. 이와 같이 봉산리 선사유적은 울진 지역 민무늬토기문화의 전개 과정과 주변 지역과의 문화적인 영향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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