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6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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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石順 |
영어음역 | Nam Seoksun |
이칭/별칭 | 시걸,서산,용인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 551[정림1길 30]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전인식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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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 551[정림1길 30]![]() |
성별 | 남 |
생년 | 1911년 1월 9일![]() |
몰년 | 1943년 12월 9일![]() |
본관 | 영양(英陽) |
대표경력 | 창유계 계원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시걸(時傑), 호는 서산(西山). 중랑장(中郞將) 남영번(南永蕃)의 후손이자 남효영(南孝永)의 손자로서 1911년 1월 9일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에서 남백연(南百秊)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3년 조선독립공작당사건과 울진적색농민조합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함흥형무소에서 복역 중 극심한 고문으로 왼팔이 불구가 되어 출감하였다. 1941~1943년에 걸쳐 남복이(南福伊), 남용식(南龍湜), 남원수(南源壽) 등 울진군 유생 22명과 비밀결사로 창유계(暢幽契)[일명 준향계·후란계·독서회]를 조직하고 상해임시정부에 조직원을 파견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이 사건으로 총 102명이 검거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16명이 수사 중 고문 치사하거나 복역 중에 옥사하였다. 남석순도 1943년 12월 9일 대구형무소에서 수사를 받던 중 극심한 고문으로 옥사하였다.
1982년 대통령표창이, 1991년 건국훈장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