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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룡 장군과 개남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1610
한자 張大龍將軍-介南塚
영어의미역 Folk Tale of General Jang Daeryong and Gaenam Grav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조은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영웅담
주요 등장인물 장대룡 장군|개남 스님|말
모티프유형 장대룡 장군의 조국애와 그를 따른 말과 스님의 의리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 무월동에서 태어난 장대룡(張大龍) 장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장대룡 장군은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 무월동에서 출생하였다. 장대룡 장군은 조선시대 1618년(광해군 10)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판관 및 삼척척사와 경흥방어사를 지냈다. 1636년 병조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 아래 삼도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을 하고 세자와 삼학사를 볼모로 청나라로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분함을 참지 못하고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장대룡 장군은 불영사에서 수도 중인 힘센 승려 개남(介南)과 의논하여 청나라 태종을 암살하여 나라의 원수를 갚자고 결심하고, 개남과 함께 말을 몰아 청나라 수도 심양으로 잠입하였다. 청 왕실의 궁 안을 살펴본 후에 궁중 화약고를 발견하고 이곳을 폭파하기로 결심하였다. 장대룡 장군은 자신의 의관을 벗어 타고 간 말의 등에 얹은 다음, 승려 개남을 말과 함께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장대룡 장군은 어둠을 틈타 궁중 화약고를 폭파시켰지만 자신은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해 화약과 함께 불타버렸다.

개남은 장대룡 장군의 의관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장군이 입었던 의관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 사리곡 동쪽 왼쪽 기슭 산에 의관장(衣冠葬)으로 매장하였다. 묘를 의관장할 때 마을 부근의 각 고을 수령들이 모여 치상을 하고 장사를 끝내자, 용마가 슬피 울다가 죽어버렸다. 사람들은 장군의 묘 북쪽에 말을 묻었는데, 이 무덤은 ‘의로운 말 무덤’이라고 전하였다. 그 후 승려 개남도 죽자 장군의 무덤 아래 쪽에 묻고 무덤을 ‘개남총’이라고 불렀다. 요즈음도 불교 신자들이 다녀가곤 한다.

[모티프 분석]

「장대룡 장군과 개남총」의 모티프는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신의 몸까지 서슴지 않고 던지는 영웅담이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장군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같이 다닌 말과 스님의 의리를 보여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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