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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대풍헌 현판 일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30001
한자 蔚珍待風軒懸板一括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봉산로 105-2[구산리 202]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김규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851년연표보기 - 울진 대풍헌 현관 일괄 중 「기성구산동사」, 「대풍헌」, 「구산동사 중수기」 제작
제작 시기/일시 1870년연표보기 - 울진 대풍헌 현관 일괄 중 「영세불망지판」 6점 제작
제작 시기/일시 1878년연표보기 - 울진 대풍헌 현관 일괄 중 「영세불망지판」 6점 제작
제작 시기/일시 1888년연표보기 - 울진 대풍헌 현관 일괄 중 「구산동사기」 제작
제작 시기/일시 1904년연표보기 - 울진 대풍헌 현관 일괄 중 「동계 완문」 제작
제작 시기/일시 1906년연표보기 - 울진 대풍헌 현관 일괄 중 「중수기」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2012년 5월 14일연표보기 - 울진 대풍헌 현관 일괄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441호로 지정
현 소장처 대풍헌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봉산로 105-2[구산리 202]
원소재지 대풍헌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봉산로 105-2[구산리 202]
성격 기록물|현판
재질 목재
소유자 대풍헌
관리자 대풍헌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441호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대풍헌에 걸려 있는 조선 후기 현판 12점.

[개설]

울진 대풍헌 현판 일괄은 울릉도와 독도를 관리하던 수토사들이 그곳을 가기 위해 머물렀던 곳인 대풍헌의 정면과 내부 마루에 걸린 현판 중 1910년 이전에 만들어진 12점의 현판을 말한다. 2012년 5월 14일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441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현판 목록은 「기성구산동사(箕城龜山洞舍)」 1점·「대풍헌(待風軒)」 1점·「구산동사 중수기(邱山洞舍重修記)」 1점[1851년], 「영세불망지판(永世不忘之板)」 6점[1870~1878년], 「구산동사기(邱山洞舍記)」 1점[1888년], 「동계 완문(洞稧完文)」 1점[1904년], 「중수기(重修記)」 1점[1906년]이다.

[특징]

「기성구산동사」와 「대풍헌」 현판은 1851년(철종 2) 대풍헌을 중수하면서 건물 밖에 내걸었던 현판으로 건물의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구산동사 중수기」 현판에는 권성도(權成度) 외 네 명의 인물이 수토 임무를 봉행하기 위해 10여 칸을 중수하고 ‘대풍헌’이라 이름하여 현판을 걸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현판의 제작 시기는 1851년 6월이다.

「영세불망지판」은 모두 6점이 있는데, 파견된 수토사들이 구산동에 머물 때 마을 사람들에게 폐해가 있자, 마을에 물자를 지원해 주거나 마을 사람들을 위로해 준 인물들의 행적을 기록하여 남긴 것이다. 세부 목록을 보면, 「평해 군수 심능무 이윤흡 영세불망지판(平海郡守沈能武李玧翕永世不忘之板)」[1870년], 「월송 만호 장원익 영세불망지판(越松萬戶張源翼永世不忘之板)」[1870년], 「평해 군수 이용익 영세불망지판(平海郡守李容益永世不忘之板)」[1871년], 「월송 영장 황공 영세불망지판(越松營將黃公 永世不忘之板)」[1869년], 「전임 손주형 손말백 손익창 영세불망지판(銓任孫周衡孫沫栢孫益彰永世不忘之板)」[1878년], 「도감 박억이 영세불망지판(都監朴億伊永世不忘之板)」[1878년]이다. 「중수기」 현판은 1906년(고종 43) 대풍헌 중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동계 완문」은 1904년(고종 41) 구산 동계를 인정해 줄 것을 관에 요청하는 내용과 그 청원에 의해 관에서 발급해 준 내용을 함께 새긴 것이다.

[의의와 평가]

울진 대풍헌 현판 일괄은 조선 정부가 19세기에도 여전히 울릉도와 독도를 영토로 인식하고 실질적으로 지배 및 관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 문화재청(www.ch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