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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1703
영어의미역 Old Story of Uljin Told by Old Tombs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시대 선사/선사
집필자 이희돈

[개설]

일반적으로 고분(古墳)이라고 하면 통상적으로 삼국시대에 조성된 옛 무덤을 일컫는다. 고분은 입지·외형·규모 및 시설, 그리고 내부 구조와 피장자(被葬者)·부장품(副葬品) 등 많은 요소들이 서로 결합되어 존재하고 있으며 고분 및 출토 유물을 통해 그 지역의 문화, 생활 풍속, 장법, 예술, 종교 등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울진군의 고분은 그 분포 상황으로 보아 지금의 울진만과 평해만, 그리고 이곳으로 유입되는 하천 유역에 주로 토착 집단 사회가 형성되었고, 그 배경에는 하천 유역의 평지에서 생산되는 농작물과 근해에서의 어로에 의존한 생활이 있었다고 추측된다. 이들 고분 구조는 대체로 석곽분(石槨墳)·수혈식석실분(竪穴式石室墳)·횡구식석실분(橫口式石室墳)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현재까지 조사된 고분군을 보면 분포 면적이나 고분의 수가 많은 것은 덕천동 고분이지만, 개개 고분의 규모는 읍남리 고분군이 더 크다. 읍남리 고분군은 울진만과 정명천 유역의 생산물을 배경으로 정착했던 고대 울진 지역 지배층의 공동 묘역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사실에서 미루어 볼 때 7세기에 들어와서 울진 지역의 중심은 봉평리에서 점차 울진읍 쪽으로 옮겨진 것이 아닐까 한다.

[덕천동 고분군]

덕천동 고분군국도 7호선을 따라 3㎞ 가량 북상하면 바다로 유입되는 하구의 넓은 평지가 나오고, 이곳을 지나면 구국도와 신국도가 갈라지는 지점에 이르면서 구릉이 앞을 가리고 있다. 신국도는 울진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구도로가 폐쇄되고 대신하여 신설된 것이다. 신도로는 현재 하천을 따라 구릉의 우측을 돌아 북상하고 있다.

덕천동 고분군은 산과 구국도 사이에 형성된 넓은 구릉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현재 구릉의 북반은 울진원자력발전소가 자리하고 있어서 알 수 없으나 발전소 건설 이전에는 고분이 분포하고 있었으며 분포 상태는 남쪽으로 갈수록 그 수가 많았다.

신국도를 개설할 때 구릉 삭토 작업에서 많은 석곽 유구가 파괴되었고, 지금도 제거된 흔적을 볼 수 있다. 원래 어느 정도의 고분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마을 동구(洞口)에는 현재 8기만이 확인되며 모두 석실이 노출되거나 붕괴된 폐고분(廢古墳)이다. 이 가운데 덕천동 148-1번지에 위치하는 고분은 그나마 봉분이 조금 남아 있다.

고분 외형상의 흔적만으로는 그 구조를 알기 어렵고, 또 일괄 출토 유물도 정확하게 보고된 바가 없으므로 부장품의 내용이나 고분의 연대 구명은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덕천마을 뒷산에 노출되어 있는 소형 고분은 석곽분이고,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인 덕천동 148번지의 고분은 횡구식 석실분일 가능성이 많다. 횡구식 석실분의 출현은 빠르면 6세기 후반부터이고 늦은 곳이라 하더라도 7세기에 들어서면 일반화되었다. 즉 횡구식 석실분이 그 지역에 있다는 것은 수혈식 석실분의 축조 이후에도 지역 집단 내에 토착의 지배층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반영한다고 하겠다.

[읍남1리 고분군]

읍남1리 고분군은 진읍 시가지를 벗어나 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산 아래에 토일마을이 있고, 토일마을 서쪽의 뒷산 능선 상에 150m 가량에 걸쳐 크고 작은 고분군이 형성되어 있다. 정상 쪽으로 올라가면서 대형분(大形墳)이 많고 아래쪽에는 소형분(小形墳)이 많은데 파괴가 심하다. 정확한 수량은 알 수 없으나 외견상 30기 이상인 듯하다.

정상부에 위치하는 고분 중에는 봉분의 크기가 저경(底徑) 20m, 높이 5m인 것도 있다. 거의 대부분 도굴되었다. 외견상 저경 10m 가량의 고분에 노출되어 있는 석곽 크기는 길이 3m, 폭 1m, 높이 1m이며 뚜껑은 판석으로 덮었다. 북면 덕천리 고분군과 비교해 보면 분포 면적과 기수(基數)는 적으나 개개 고분의 규모는 이곳 읍남1리 고분군 쪽에 더 큰 것이 많다.

출토 유물은 완형(完形)의 토기는 볼 수 없으나 산재하는 토기 편으로 보아서는 덕천리 고분 출토의 고식(古式)과 비슷하며, 기벽(器壁)의 두께가 1.5㎝ 가량 되는 대옹편(大甕片)도 많이 확인된다. 고배개(高杯蓋)의 꼭지는 가야계라 여겨지는 단추 모양의 것이 대부분이다. 이후 발굴 조사를 거쳐야 알겠지만 현재 산재하는 토기 편만으로 볼 때 이곳 고분군의 문화는 낙동강 상류의 고분 토기에서 영향을 받은 듯하다. 읍남1리 고분군은 울진만과 정명천 유역의 생산물을 배경으로 정착했던 고대 울진 지배층의 공동 묘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산동 고분군]

기성면 마산동 고분군은 해안 가까이에 위치하는 북면 덕천리 고분군이나 울진읍 읍남1군 고분군과는 달리 해안에서 좀 떨어진 산간지로서 기성리에서 동해로 유입되는 정명천 한 지류의 상류 오지에 위치하고 있다. 고분은 지금의 교통으로 동해고속도로 상에 있는 사동1리 학골재를 넘어서 마산마을로 가는 계곡 우측 야산에 1군(群)이 분포하고, 또 다른 1군은 좀 더 안으로 들어간 마산마을인 삼산1리 동편 야산에 분포하고 있다.

마산동 고분군은 입지 상으로 볼 때 하천 상류의 좁은 계곡을 따라 들어간 오지에 있고, 가까운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넓은 평야가 없는 점이 특이하다고 하겠다. 봉분은 거의 없고, 노출되어 있는 석곽의 경우 할석(割石)이나 천석(川石)을 이용해서 장방형의 석곽을 쌓았으며, 개석(蓋石)은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석곽의 크기는 길이 2m 내외, 폭과 높이는 각각 50㎝의 것이 많다.

[봉평리 고분군]

봉평리 고분군봉평2리에 위치한다. 남쪽의 음지마을과 북쪽의 양지마을 일대가 고분군으로 이 마을 남쪽에 나지막한 야산(해발 33.8m)이 자리하고 있는데, 고분군의 흔적은 확인하지 못하였으나 고분군으로 추정된다. 음지마을 건물을 개축 또는 증축할 때 토기 편들이 많이 출토되었다고 하며, 도로에 인접한 주유소·여관 등의 건물을 신축할 때에도 유물이 출토되었다. 지금도 주변에 많은 토기 편들이 산포하고 있다.

음지마을에서는 4세기 후반으로 보이는 장경호 등의 토기들이 출토되기도 하였으며, 국립경주박물관에 의해 1기의 석곽묘에서 6세기 중후반경으로 보이는 양이부호·고배·대부장경도 등의 토기와 금동 귀걸이 3점이 수습되었다. 음지마을 서편 논은 울진봉평신라비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오산리 고분군]

오산리 고분군은 동해 해안가에 있는 무릉마을의 뒷산 서쪽에 위치한 나지막한 구릉 정상부에 있다. 이 구릉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곳으로 이 구릉 상의 정상부를 따라 고분이 유존한다. 고분은 대부분 도굴된 상태이고 벽체는 할석과 산돌을 사용하였다. 가장 큰 봉토분으로는 지름 10m 높이 2m이며, 그 외 2~3기의 봉토분이 더 확인된다. 그 주변으로는 다수의 석곽묘가 노출되어 있다. 지표에서 수습되는 토기 편으로 보아 삼국시대 고분군으로 추정되며 봉토분은 석실분으로 추정된다.

[황보리 고분군]

황보리 고분군은 ‘새마을’ 뒷산인 서쪽에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나지막한 구릉의 정상부에 있다. 이곳에는 봉토분과 석곽묘 다수가 확인된다. 지표에서 수습되는 토기로 보아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 고분군으로 추정된다.

[덕신리 고분군]

덕신리 고분군은 덕신리 후리동 뒷산의 북서쪽 능선 상에 위치하며 울진~영덕 간 4차선 확장 공사 구간 내에 위치하고, 2002년 12월 안동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한 바 있다. 발굴 결과 총 83기의 삼국시대 수혈식 석곽묘를 비롯해 조선시대 건물지 등 39기가 조사되었다. 장축 방향은 대부분 북서-남동으로 거의 일치하고 있어 능선에서 계곡부까지 긴 열을 형성하고 있다. 석곽의 크기는 대략 너비 70㎝, 길이 250㎝, 높이 60㎝를 전후하며 평면 모습은 대부분 장방향으로 한쪽 단벽이 호형을 이루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삼산리 고분군]

삼산리 고분군사동리에서 삼산리 방향으로 한곡재를 넘으면 아니골·버미기골을 지나게 된다. 아니골과 버미기골 사이 구릉지 일대가 삼산리 고분군이다. 도로 포장 공사로 절개지에서 석곽분의 단면이 노출되어 있다. 구릉에는 노출된 석곽이 곳곳에 남아 있고, 개석과 벽석으로 보이는 석재도 흩어져 있다. 석곽과 도로 사면에서 수습되는 편들은 삼국시대 토기 편과 함께 자기 편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덕산리 고분군]

덕산리 고분군원덕산 마을 남쪽의 구릉 동쪽 사면에 위치한다. 이미 상당 부분 삭토되어 경작지로 변모하였는데 남은 절개면 상부에 고분의 벽석이 드러나 있고, 논에는 절개지에서 흘러내린 천석과 토기 편 등이 수습된다.

[금음리 고분군]

금음리 고분군은 금음리 섶밭밑마을 북편의 야산 동남쪽 사면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유적의 동남쪽으로 150m 떨어져 광활한 동해가 펼쳐져 있는, 확 트인 곳이다. 지표 상에서 소량의 회청색 경질토기 편이 확인되지만 현재 유구는 확실치 않다. 울진군 향토사학자들에 의해 고분군으로 조사된 바 있어 추후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거일리 고분군]

거일리 고분군은 거일리 개바위마을에서 남쪽으로 덕운수산송장으로 가는 진입로의 좌측 편 골짜기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물이 신고되면서 고분군의 존재가 알려졌는데 사면의 경사가 심하고 봉토가 확인되는 유구는 보이지 않지만, 일부 석재들과 출토 유물로 볼 때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로 이어지는 고분군이 분포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음리 고분군]

노음리 고분군은 매림동 북쪽의 개눕들과 접한 구릉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구릉지 일대의 일부는 집들이 들어서 있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집 뒤쪽 구릉지에서 지면에 노출된 석곽이 확인되고 있다.

[매화리 고분군]

매화리 고분군은 매화면 면소재지를 관통하는 구도로와 국도 7호선이 서로 만나는 지점의 우측 편 야산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고분군이 확인되는 야산 서쪽 사면은 구도로 구간을 직선화로 확장하면서 상당 부분 절토된 상태이고, 동쪽은 신설 영덕~삼척 간 국도 7호선의 확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현재 외딴섬처럼 남은 상태이다.

2003년 안동대학교박물관에서 매화리 고분군 남동쪽의 능선 사면에 삼국시대 석곽 1기를 발굴 조사한 바 있다. 또한 경상북도 문화재연구원의 조사에 의해 서쪽 사면의 절토지에서 석곽의 벽체석뿐 아니라 고배 등의 유물이 박힌 채로 확인되었다. 현재 이 야산 일대에는 20여 기 이상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산재해 있으며 석곽이 대부분 노출되어 있는 상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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